풍자거리 넘치는 시국 속 닻 올려…팩트 조사+성실함으로 완성도↑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주요 정치 이슈나 인물을 돌려 돌려서 겨우 말해놓고는 자기 만족하며 낄낄 웃는 프로그램의 시대는 갔다.
'구(舊) 시대'의 퇴장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SBS플러스 '캐리돌뉴스'는 지금까지의 정치풍자는 풍자 축에도 못 낀다고 비웃기라도 하듯 대담하고 직선적이다.
물론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채널이긴 하지만, '블랙리스트'가 언급되던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이 같은 풍자를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 채널이 몇이나 됐을까. 그러고 보면 한 시대가 정말 저물긴 저물었나 보다.
◇ 실물 특징 극대화 인형+성대모사…성역 없는 등장인물
'캐리돌'은 '캐리커처'와 '인형(doll)'의 합성어인 만큼 이 프로그램에선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를 망라하는 주요인물과 닮은 인형들이 출연해 신랄한 비틀기로 통쾌함을 선사한다.
인물의 특징을 극대화해 실제 사람과 똑같은 크기로 제작한 인형에 개그맨 배칠수, 전영미, 정성호, 안윤상 등 성대 모사꾼들의 목소리가 입혀지니 싱크로율은 물론 풍자의 수위가 더 높아 보일 수밖에 없다.
등장인물에도 성역이 없다. 대표적인 건 'GH'로 등장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MB'로 나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특히 두 사람(?)이 함께 진행하는 대담에선 4대강 사업 예산 22조원, 정부 부채 682조원 등을 직접 거론하며 '셀프 디스'를 해 씁쓸한 웃음을 자아냈다. 둘은 그러면서 "우리는 손 털고 나왔다"고 책임감 없는 모습을 보여 분노를 유발했다.
tvN의 '도깨비'를 패러디한 '허깨비'도 단연 화제다.
극 중 공유에게 자신이 '도깨비 신부'라고 주장하는 GH와 실권자 치킨집 사장 '순siri(최순실)', GH를 잡으러 온 저승사자로 이동욱이 아닌 '박(영수) 특검'의 등장하는 모습은 시청자를 배꼽 잡게 한다. 캐릭터만 따온 게 아니라 내용도 원래 원작의 스토리를 시국과 절묘하게 결합한 게 특징.
권력을 잃은 정치인들만 풍자의 대상이 아닌 게 더 반갑다. 대선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등을 상징하는 인형들도 등장해 옛 인물들과 진흙탕에서 뒤섞인다.
이밖에 GH가 각자 다른 방에서 수감 중인 순siri와 '(김)기춘대원군', '이 부회장'과 화상채팅을 통해 시사퀴즈를 내고, 수감자들은 오답 퍼레이드를 이어가는 코너, '김상중하'가 진행하는 '그들이 알고 싶다' 코너도 인기다.
◇ 빗장 풀린 풍자 코미디…원동력은 넘치는 콘텐츠와 성실
왜 이제야 이런 시원한 풍자 코미디가 나왔을까.
사실 '캐리돌 뉴스'의 아이디어는 4∼5년 전부터 기획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바로 방송했다면 방송이 어려웠을 수 있고,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수 있다.
SBS미디어넷 측은 11일 "사실 기획 의도는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등 전반에 대해 풍자를 하잔 것이었는데 지금은 정치적 이슈가 워낙 센 시점이라 포커스가 맞춰진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는 연예, 스포츠 쪽으로 범위를 넓힐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 분야의 풍자 거리는 한동안 줄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부터 사상 처음 현직 대통령의 탄핵 사태까지 풍자할 거리가 풍성해졌기 때문이다. 팩트 없는 풍자는 그저 공감 못 얻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던 제작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풍부한 이야깃거리에 성실까지 더해지니 완성도가 더 높아졌다.
'캐리돌뉴스'에는 PD 4명과 작가 6명이 달라붙는다. 여기에 한 주의 이슈 관련 기사를 검토하는 작가 2명이 따로 있다.
인형을 만드는 양한모 작가도 매번 새로 등장하는 인물을 깎아내는 데 여념이 없다. 스태프는 5∼10분 분량을 위해 온종일 인형 뒤에서 얼굴 근육과 손을 움직이는 수고를 감수한다.
외화 더빙이 점점 사라지면서 설 자리를 잃었던 전문 성우들과 성대모사에 능한 개그맨들이 서로 '경연'까지 해가며 합심하고 있다.
SBS미디어넷 관계자는 "'캐리돌뉴스'의 '마당놀이' 같은 정서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 것 같다"며 "서민들의 말로 풍자와 해학을 건강하게 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지상파에서도 이런 화끈한 풍자와 해학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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