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안산에 설립…"치유 안되지만 굳은살 돋게"
함께 밥 먹으며 대화, 울고 웃으며 '일상 복원' 도와
(안산=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세월호가 바닷속에 침몰해 있던 지난 3년은 살아남은 자들에게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처참한 세월호의 몰골처럼 그들의 삶도 부서지고 일그러졌다
지난 3년간 끊임없는 고통에 괴로워하는 세월호 유족들과 긴 시간 함께하며 슬픔을 나눈 '이웃'이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그해 9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문을 연 '치유공간 이웃'이다.
'이웃'은 유족들이 가다 넘어지면 약 바르고, 허기지면 함께 밥술 뜨고, 지치면 쉬었다 가고, 외로우면 함께 울고, 아이들 얘기하다 웃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이곳에서 편하게 상담받고 함께 밥 먹고 이야기하며 보낸 3년 가까운 시간은 유족들에게 참사 직후 무너진 일상을 이어갈 만한 힘을 주는 '윤활유'가 됐다.
◇ "아이 잃은 슬픔은 치유 안 돼…굳은살 돋게 봐줄 뿐"
침몰한 지 1천90일째인 9일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고 참사 3주기가 다가올수록 자식과 가족을 가슴에 묻은 유족들에게 그날의 기억은 더 생생해진다.
흰점을 찍어놓은 듯 활짝 핀 벚꽃만 봐도 끔찍했던 3년 전 4월의 기억이 떠올라 집 밖으로 나갈 힘도 없고 우울감도 심해지는 게 해마다 일상이 됐다.
이용하(44·여) 치유공간 이웃 대표는 "4월이 시작되는 시점, 입학 철, 명절, 크리스마스, 아이 생일, 이런 날이 되면 유족들은 집 밖으로 잘 안 나온다"며 "입원하는 분도 이때가 되면 부쩍 많다"고 말했다.
바닷속으로 침몰한 세월호와 함께 304명이 희생된 '잔인한 4월'이 되면 이들에게 특정한 시기에 발생하는 심리적·신체적·행동적 반응인 '기념일 반응'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념일 반응은 트라우마가 남을 정도로 충격이 큰 경험을 겪은 시기가 다가올 때 나타나는 우울·불안·신체적 통증이다.
이 대표는 "이웃은 치유공간을 표방하지만, 아이를 잃은 슬픔은 치유가 안 된다"며 "유족들이 넘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굳은살 돋게 봐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3년이 지나면서 이제야 조금씩 유족들이 사회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상태에 진입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 아이 잊히는 게 두려운 유족, 기억조각 맞추며 '안도·위로'
참사 직후부터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들의 심리 상담과 치료를 해온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54) 박사는 "치유란 궁극적으로 깨진 일상에 대한 복원이어서 밥을 잘 먹고 사람들과 편하게 대화하는 일상적 행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 박사는 서울에서 10년간 심리분석 회사를 운영하던 남편 이명수(58) 씨와 참사 이후 회사를 정리하고 안산으로 이사해 아름다운재단 후원으로 2014년 9월에 '이웃'을 만들었다.
이 씨가 이웃의 대표를 맡아 지난해 11월까지 2년여간 운영했고 정 박사도 안산에 머물며 참사 피해자들을 상담하고 심리치유를 도왔다.
이웃은 설립 준비단계부터 포함해 아름다운재단으로부터 3년간 후원을 받았다. 이 단체의 후원 기간이 만료된 후에는 주변인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용하 현 대표는 "이웃을 설립하고 자리 잡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두 분은 시스템만 갖춰지면 전문가 없이 일반인 누구나 심리치유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다"며 "그래서 이명수 선생님은 지난해 11월 대표직을 저에게 내주고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정 박사님은 자문위원 직함으로 후방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요즘도 한 달에 한두 번씩 안산을 찾아 유족들을 살뜰히 챙긴다.
이들의 말처럼 유족들은 이웃에서 편하게 대화하고 밥 먹고 뜨개질하는 일상적 행위를 한다.
월요일에는 자원봉사자가 유족들에게 마사지를 해준다.
화요일에는 안산 합동분향소 유가족 식당에 갖다 줄 반찬을 만든다.
수요일은 뜨개질 수업, 목요일은 동네주민 대상으로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뜨개질 수업은 인기가 가장 많아 30∼40명의 엄마가 찾는다.
이 대표는 "누군가는 고통을 털어놓고, 누군가는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서로 치유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서로 버틸 힘이 생기고 의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족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공포는 아이가 잊히는 것이라고 해요. 엄마조차 자기 자식을 잊게 될까 봐 두려워하죠."
이 대표는 "아이를 기억하는 친구와 동네주민, 상인들이 모여 기억의 조각을 맞추다 보면 유족들은 '나 혼자만 아이를 기억하는 게 아니구나' 하며 안도하고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의 생일모임을 마련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웃은 치유공간을 만들고 나서 이제까지 희생 학생 생일모임을 57차례 열었다. 유족 동의를 받아 한 달에 2건에서 많게는 6건까지 생일모임을 했다.
이 대표는 생일모임 분위기에 대해 "울다가 웃다가 하는데 굉장히 재미있다. 3월 마지막 주에는 올해로 세 번째 생일모임을 한 학생의 가족과 지인들이 모였다"고 했다.
◇ "잊어. 왜 유난 떠니"…상처 곪은 피해자들 주목해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통상 충격적인 사고나 사건을 겪은 지 6개월이 지나고 나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수년간 지속한다.
"희생자 생일모임을 하면 학교·학원·교회 등에서 알고 지낸 아이 친구들이 오는데 이 애들이 가진 고통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예요."
이 대표는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친구를 잃고 2∼3일 간격으로 장례식장을 수십 군데씩 다녀간 아이들 고통이 터져 나오고 있어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약물치료를 받는 아이, 학교생활에 적응 못 해 자퇴하는 아이, 부모와 불화로 집을 나가는 아이 등등.
"잊어. 왜 유난 떠니. 네 친구, 형제만 그런 거 아니잖아."
부모와 주변 어른들의 이런 시선과 말이 형제자매와 친구를 잃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됐고 3년이 지나 이제 곪을 대로 곪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 친구들은 직접 피해자인데도 고통을 털어놓지 못하다가 곪은 상처가 터져 사회에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피해 가족과 생존자에게 상담치료, 치유 대책 등이 집중되다 보니 이 친구들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gaonnu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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