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이른바 '스트레스 산업'이 성행하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최근 들어 사회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증폭'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12일 "과거에는 열심히 일해 저축하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가족이 모두 잘살 수 있다는 미래 보장 지향적인 사회였지만, 요즘에는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를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심 교수는 "고도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값어치,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질까 봐 불안해한다"며 "하지만 대인 관계마저 해체되면서 개개인이 겪는 불안 등 감정적인 어려움을 누군가와 나눠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서 일찌감치 '내 집 마련'의 꿈은 포기한 채 당장 나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는 상품, '나를 위한 소비'에 아낌없이 쓰게 된다는 설명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웰빙이나 힐링을 주제로 한 관광 상품 등이 한창 출시됐지만, 최근에는 시간과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단발성' 스트레스 해소 상품이 인기를 끄는 것도 특징이다.
적은 돈으로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이른바 '작은 사치' 현상이 젊은층에서 확산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정과 직장 등 모든 곳에서 피곤하고 여유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적은 돈이라도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해 소비하며 스트레스를 풀려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분석했다.
현실적으로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매번 여행을 간다거나, 큰돈을 들여 무언가를 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도심에서 적은 돈과 짧은 시간을 들여 '작은 효용'을 느낄 수 있는 상품이 인기를 끈다는 설명이다.
스트레스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지속하고 있는 정치적인 혼란상이 한국인들의 스트레스 체감 지수를 높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다른 사회에 비해 '과잉정치', 즉 정치가 개인의 삶의 영역에 너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며 "다양한 정치적인 스펙트럼을 인정해주기보다는 '내 편, 네 편'을 확실하게 정해야 하는, 동조성을 강요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함 교수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인식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결국 개개인에게는 피로감, 스트레스가 된다"며 "정치 스트레스로 인해 새로운 시장이 더 활성화되는 측면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트레스 산업이 성행하는 것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스트레스마저 상품 소비를 통해 해소하는 사회가 됐다는 것은 그만큼 일상에 상품이 깊숙이 들어와 무엇이든 다 돈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역으로 말하면 오히려 빈부의 구분이 더 확연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스트레스 상품을 소비할 금전적 여유가 없어 또다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소비 저하가 심화할 것이란 주장도 있다.
심 교수는 "스트레스 해소 상품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들 결국 큰돈을 쓰는 것도 아니고, 작은 단위 소비에 국한된다"며 "결과적으로는 장기불황에 빠지게 되고 정부의 경기부양책이라는 것 자체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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