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5.9 대선'에서 기존의 선거 불문율이 깨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 구도가 와해하는 조짐이 확연하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보수정당=영남, 진보정당=호남'이라는 등식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유력한 보수 후보의 부재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쨌든 선거 때마다 특정 지역이 '묻지 마 몰표'를 던지는 후진적 형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종 선거 결과에서도 이런 투표 성향 변화가 현실화된다면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 치유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최근 연합뉴스와 KBS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선두를 다투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두 후보의 지지율 분포에서 과거와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대구·경북에선 안 후보(38.0%)가 문 후보(22.8%)를 크게 앞섰다. 하지만 부산·울산·경남에선 문 후보(32.8%)가 안 후보(28.5%)를, 호남에선 안 후보(41.7%)가 문 후보(38%)를 근소한 차로 앞섰다. 보수의 '적자'를 자처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대구·경북 13.1%, 부산·울산·경남 13.0%로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역시 보수를 표방하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두 지역에서 각각 2.4%에 그쳐 명맥을 잇기에 급급했다. 홍, 유 두 후보의 지지율 합이 15%에 턱걸이한 결과만 보면, 영남권이 보수의 텃밭이라는 오랜 통념이 사실상 소멸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보수 본산의 이런 표심 변화는, 대선 구도가 문, 안 후보의 양강 대결로 재편되면서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홍, 유 후보에 보수층이 등을 돌린 결과인 듯하다. 지역과 진영 논리를 넘어서는, 일종의 사표 방지 심리가 작용한 셈이다. 문 전 대표의 대북·안보관을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보수층이, 그나마 덜 진보적이고 사드 배치에도 찬성 입장을 보이는 안 후보 쪽에 표를 몰아줬다는 해석도 있다.
중도층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번 대선판의 주목할 만한 관전 포인트다. 보수·진보 양 진영의 극단적이고 맹목적인 행태에 염증을 느끼고, 대안을 찾아 나서는 '표심'이 늘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스스로 중도 성향이라고 밝힌 응답자 비율이 지난 1월 25.0%에서 이달 들어 33.1%로 높아졌다. 실제로 진보 정권 10년, 보수 정권 9년을 거치면서 이념 과잉과 이분법적 대결 구도에 넌더리가 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이 같은 흐름이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유력한 보수 후보의 부재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치 흐름으로 자리 잡을지는 당장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지역주의에 기대거나 네 편, 내 편 갈라 무조건 상대를 적대시하는 과거 정치의 구습은 시급히 청산해야 할 적폐임이 분명하다. 각 후보도 이런 표심 축의 이동을 외면하면 안 될 것이다.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이 무조건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식의 저급한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이다. '합리적 의심'을 가질 만큼 사실관계가 갖춰진 문제 제기까지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언뜻 보아도 얘기가 잘 안 되는 네거티브를 연일 눈만 뜨면 쏟아내는 식이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선거의 승부는 후보들의 약점보다 장점에서 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대선이 그처럼 혁신적인 선거문화 정착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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