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회, 올해 예산 23억 삭감…농촌 학생 통학지원 등 무산 가능성
(춘천=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강원 양구군의 한 산간마을에 사는 A 양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2시간 동안 산길을 혼자 걸어서 귀가해야 했다.
인적이 드문 산길 5㎞를 여중생 홀로 걸어서 하교하는 게 아버지(47)뿐만 아니라 이웃 주민들이 보기에도 아슬아슬했다.
산골 중학생들의 유일한 통학 수단이나 다름없는 '에듀버스'는 수업이 끝나는 시간 전에 사실상 끊어지는 데다 홀로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로서는 외부에서 중장비 일을 하다 달려올 처지가 아니어서 A 양은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애초 에듀버스는 초등학생의 등하교를 돕기 위한 것이다 보니 양구교육청은 통학 거리가 먼 중고등학생의 하굣길까지 지원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강원교육희망재단은 A 양처럼 원거리 통학에 어려움을 겪는 농촌 지역 '꽃님이'의 통학지원을 최우선 사업으로 정해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꽃님이는 에듀버스 노선이 닿지 않는 농어촌 작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신하는 이름이다.
또 농산어촌 중고생 예체능 진로 멘토링 및 장학 지원, 작은 학교와 대기업 사회공헌 프로그램 연결, 도시 학생의 산골유학 지원,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작은 학교에 대한 심층 연구 등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려움에 놓인 농촌의 소규모 학교를 살리기 위해 첫걸음을 내딛는 강원교육희망재단은 출범부터 발목이 잡혀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강원교육희망재단은 12일 오후 2시 강원도교육연구원 별관에서 관계자가 참가한 가운데 조촐하게 현판식과 사무실 개소식을 개최했다.
농촌 학생의 통학을 우선 지원하고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인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무거웠다.
강원희망교육재단은 올해 본 예산에 28억원을 편성, 20억원을 재단의 기본재산으로 출연한다는 계획으로 사업을 추진했지만, 강원도의회가 예산 심의 과정에서 23억원을 삭감해 5억원으로 빠듯한 살림살이를 시작했다.
5억원 중 3억원은 재단의 기본재산으로 출연해 실제 운영비는 2억원에 불과했다.
재단은 사무실 운영에 필요한 기기를 구매하고 최소한의 인원을 운영하며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운영비는 지난달 이미 바닥이 난 상태다.
인건비조차 줄 수 없게 된 재단 측은 기부금 등을 유치하기 위해 채용한 직원 2명까지 해고했고, 재단을 이끄는 현원철 상임이사는 최저 임금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강원도의회의 강원도교육청 본예산에서 삭감된 예산 23억원은 최근 추가경정예산안 심의과정에서도 전액 삭감되는 등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강원도의회 교육위원회가 지난 6일 올해 재단 예산으로 편성된 23억원을 전액 삭감해 사립유치원 학부모 부담금으로 돌리면서 재단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강원도교육청은 어린이집과는 달리 사립유치원의 학부모 부담금을 지원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며 교육위의 결정에 끝내 동의하지 않았지만, 교육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단은 2021년까지 출연금과 기부금 등 300억원을 마련해 존폐위기에 놓인 농어촌 학교를 살리는 데 필요한 사업을 추진하고자 지난 2월 창립총회를 연 데 이어 이날 개소식을 마련했다.
재단은 도 의회 교육위원 등을 개소식에 초청했지만, 이들은 "일정이 겹친다"라며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도내 교육계는 재단을 운영하도록 조례까지 통과시켜준 도 의회가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예산조차 통과시켜주지 않은 것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농촌 지역의 소규모 학교 통폐합 반대 운동을 펼쳐온 나흥주 강원학교운영위원회 총연합회 회장은 "도 의회가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작은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 "사무실 현판식을 했지만, 구성원 급여조차 주기 어려워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원철 강원교육희망재단 상임이사는 "재단이 태동하는 시기에 환경이 좋지 않다"며 "일반인의 소액기부를 활성화하는 등 자생력을 키울 대책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dmz@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