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북핵위기, 2002년 2차 위기 때와 판박이로 진행

입력 2017-04-13 17:21   수정 2017-04-13 17:43

2017 북핵위기, 2002년 2차 위기 때와 판박이로 진행

2차 위기는 6자회담으로 봉합…이번엔 美본토 위협 위기감에 결말 예단 못해

대사·소품은 재방송 수준이지만 예측불가형 주역들로 위기감 증폭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미국은 이(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지 못할 경우 북한에 대한 공습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최근 정상회담에서 한 말이 아니다. 바로 14년 전인 2003년 2월 7일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장쩌민 당시 주석과 전화통화에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압박하면서 한 말이다.

이에 앞서 2002년 10월 부시는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 장쩌민을 초청해 가진 정상회담에서도 북핵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위협"이라며 공동 대응을 요구했다. 부시가 2010년 11월 발간한 자서전 '결정의 순간들'에서 밝힌 발언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도 최근 플로리다 리조트 마라라고로 시진핑 현 중국 국가주석을 초청해 가진 회담에서 상당한 시간 단독회담을 하면서 "완전한 범위의 선택안들"을 논의했다고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밝혔다. 미국의 군사공격 선택안도 포함됐다는 뜻이다.

트럼프가 북한 핵·미사일은 "중국에도 좋지 않다"며 "중국은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하자 시 주석은 중국과 한반도(Korea)간 수천 년 역사와 김정은과 갈등을 빚은 관계를 설명하면서 중국의 고충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14년 전 장쩌민도 부시의 대북 영향력 행사 주문에 "그것은 매우 복잡한(complicated) 문제"라고 답변했다고 부시 대통령은 회고했다.

부시-장쩌민, 트럼프-시진핑간 대사들이 마치 같은 드라마의 재방영인 것처럼 닮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 글이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군사공격 카드를 은연중 흔들고 북한 겁주기에 시리아를 등장시키고,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와 노동신문을 통해 "그에 놀랄 우리가 아니다"라거나 "선제타격은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다"고 대응하는 것도 기시감을 준다.

2003년 2월 7일로 다시 돌아가면, 부시는 기자들과 만나 북핵 문제에 관해 "물론 모든 선택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고, 그에 앞서선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들에 대한 기습공격을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들이 전해졌다.

당시 북한 노동신문은 "우리는 미국의 선제공격에는 강력한 반공격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대응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미 국방장관이 북한 정권을 "테러리스트 정권"이라고 규정하고, 이라크 전쟁을 준비하는 동시에 필요하면 북한에 대응할 수 있다고 위협하자 북한 외무성의 리평갑 당시 부국장은 "미국은 우리를 이라크 다음 차례라고 말한다. 그러나 …선제공격이 미국만의 배타적 권리가 아니다"고 응수했다.

그해 2월 19일 아사히 신문과 인터뷰에서 애슈턴 카터 전 미 국방 차관보는 "공격을 결단해야만 하는 한계점 직전에 와 있다"며 "북한이 핵연료 재처리를 시작한다면 정밀하게 찍어내는(pinpoint) 폭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핵폭발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면 미국이 미사일 요격 등 군사적 대응조치를 할 가능성이 지금 거론되는 것과 똑같다.

중국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일본 핵무장' 카드도 공통으로 등장하는 소품이다. 부시는 2003년 1월 장쩌민과 회담에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이 계속되면, 일본의 핵무기 개발을 멈추도록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트럼프는 대선 운동 기간부터 아예 공개적으로 일본 핵무장 카드를 흔들어 댔다.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 개발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작된 제2차 북핵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2003년 2월은 임기가 끝나가는 김대중 정부와 신임 노무현 정부의 교체기였다. 2차 위기가 시작된 2002년 10월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간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지금처럼 정권교체기로서 한국 정부의 지도력이 가장 취약할 때였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2002년 10월 23일 청와대로 민주당 노무현, 한나라당 이회창, 국민통합21 정몽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와 무소속 이한동 의원 등 주요 대선 예비후보들을 초청, 간담회를 열고 각론에선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에 대한 "초당적 대처" 원칙에 의견을 같이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도 이 점을 의식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대선 예비후보들을 한 자리에 초청할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이다. 각 당 대선후보들끼리는 한자리에 모여 미국, 중국, 북한의 행동을 한국의 이익에 맞게 이끄는 대책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는커녕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를 놓고 이미 한차례 이견을 빚었다.

북핵 위기는 1990년대 이래 늘 존재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 비확산국장은 지낸 로버트 리트워크 우드로윌슨센터 부회장은 지난 2월 내놓은 '북한의 핵 돌파(breakout) 저지책'이라는 보고서에서 1994년과 2002년에 이어 이번 위기를 제3차 위기로 규정했다.

94년은 핵연료봉으로부터 플루토늄 추출, 2002년은 비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미국의 북폭을 검토할 만큼 중대 사안이었다면, 이번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직접 미국을 위협할 만큼 도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있다. 북한의 핵역량이 기존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대응이 그만큼 거칠게 나올 수 있다.

2002년 위기와 지금의 위기는 지금까지 진행되는 줄거리와 대사, 소품들이 약간의 변주 속에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미리 짜놓은 각본이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느끼는 위협 수위가 그때와 다르고 등장인물이 모두 교체됐다. 6자회담 개최로 봉합된 제2차 위기 때와 같은 '해피 엔딩'이 될 것이라고 예단할 수 없다.

특히 트럼프와 김정은은 서로 상대를 시험해보지 않은 관계다. 김정은은 서방 일각에서 '미치광이' 취급을 받지만, 트럼프도 그보다 순화된 표현인 '예측 불가' 형의 지도자다. 트럼프 본인이 '예측 불가'를 자랑스러운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다. 미치광이일 리 없는 두 사람이 미치광이인 척 한 번도 합을 맞춰보지 않은 대련에 나서고 있는 게 4월 한반도 위기설을 낳고 있다.

yd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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