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3주기] 3년째 '4월 17일'을 기다리는 가족들

입력 2017-04-14 07:06   수정 2017-04-14 14:56

[세월호 3주기] 3년째 '4월 17일'을 기다리는 가족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9명과 가족들의 이야기

(목포=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눈을 감고 또 눈을 떠도 아직 다윤이가 돌아오지 않은 거에요. 지난 3년간 매일 '2014년 4월 16일'인 삶의 연속이었어요."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항해 중 침몰한 세월호는 304명의 생명과 그 가족들의 삶까지 집어삼켰다.

바닷속에 가라앉았던 세월호는 3년 만에 육지로 돌아왔지만 미수습자 9명은 아직 유해조차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가족을 찾으러 진도로 달려왔던 3년 전 그날에 멈췄던 시계가 다시 움직여 '4월 17일'이 오기만을 바라며 하루를 3년같이, 3년을 하루처럼 보내고 있다.

◇ 단원고 2학년 허다윤

단원고 허다윤양 어머니 박은미씨는 14일 "처음에는 '전원 구조' 뉴스를 보고 그저 애가 물에 젖었을까봐 그게 걱정돼 옷 한 벌만 챙겨 진도에 내려갔다. 그런데 아직도 옷을 갈아입히질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3년 사이 신경섬유종을 앓던 박씨는 종양이 커져 오른쪽 청력을 잃었고 남편 허흥환씨는 반년 넘게 휴직을 했다가 결국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박씨 가족을 바라보는 주위의 걱정이 커졌지만 박씨는 그런 것은 하나도 걱정되지 않았다.

그저 영혼으로라도 돌아온 다윤이가 변해버린 엄마 얼굴을 못 알아보면 어떻게 하나, 그리고 다윤이 언니이자 안산에 홀로 남겨놓은 큰딸의 상처가 걱정될 뿐이었다.

나쁜 변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몸이 약해 몇 번이나 쓰러지고 큰 소리 한 번 내본 적이 없었던 박씨는 이제 전국 각지를 돌며 무대에 오른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세월호 속 미수습자들을 잊지 말고 찾을 수 있게 제발 도와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강한 엄마가 됐다.

박씨는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몇 안 되는 나머지 가족들에게만 짐을 지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엄마로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달라지게 했다"고 밝혔다.

◇ 단원고 2학년 박영인

다른 가족들도 지난 3년간 이런저런 사연을 겪으면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미수습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박영인군 부모 박정순·이선화씨는 생전에 축구화를 사 달라던 둘째 아들의 말을 들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축구화를 사 팽목항에 놔두고 아들을 기다렸다.

2014년 가을 운동복이 든 영인군의 가방이 먼저 가족들에게 돌아왔지만 장난꾸러기 막내 영인군은 아직 엄마·아빠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택시 운전을 하는 박씨는 생계를 위해 안산에 돌아가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팽목항과 세월호가 인양된 목포신항에 내려와 있는 날이 더 많다.

◇ 단원고 2학년 남현철

자녀들의 인연 덕분일까.

박영인군 부모 박씨 부부는 영인이와 같은 반이던 남현철군의 부모 남경원씨 부부와 친하게 지내며 안산에서 진도나 목포를 오갈 때도 자주 동행한다.

현철이는 기타 연주를 즐겨 했고 글도 잘 써 노래 가사를 만들기도 했다.

아들을 찾지 못한 고통에 힘든 나날을 보냈던 남씨는 얼마 전부터 화물차 운전 일을 시작했다.

주변 가족들은 세월호 인양이 성공하면서 남씨의 얼굴도 많이 밝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 단원고 양승진 교사(윤리)

세월호가 침몰 후 처음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지난달 23일, 단원고 양승진 교사 부인 유백형씨는 "남편이 33주년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고 돌아온 것만 같다"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거동이 불편한 80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어 세월호가 목포로 완전히 옮겨지고 나면 현장에 내려오려 했지만 애타는 딸의 마음을 눈치챈 노모가 등을 떠밀자 한달음에 달려왔다.

양 교사는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제자에게 주고 아이들이 있는 배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유씨는 아버지처럼 훌륭한 교사가 되고 싶다며 임용시험 준비를 하는 딸과 은행원이 된 아들의 소식을 남편에게 가장 먼저 전해줄 계획이다.

◇ 단원고 고창석 교사(체육)

다른 학교 근무 시절, 학교에 불이 나자 가장 먼저 소화기를 들고 뛰어왔던 단원고 고창석 교사는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학생들이 있던 객실을 뛰어다니며 탈출을 돕다가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부인 민동임씨는 어린 두자녀를 홀로 돌보며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 이영숙씨

이영숙씨는 오랫동안 떨어져 살던 아들과 제주도에서 함께 살기 위해 이삿짐을 옮기다가 참변을 당했다.

이씨는 생계 때문에 아들 박경태씨를 어렸을 때부터 시댁에 맡기고 일했던 것을 늘 미안해했다.

어머니가 없는 제주에서 홀로 직장 생활을 하며 지난 3년동안 살이 많이 빠지고 얼굴도 그을린 경태씨는 휴가를 낼 수 있을 때마다 세월호 인양 현장을 찾아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불러 본다.




◇ 권재근씨·권혁규군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군은 온 가족과 제주도로 이사를 하던 길에 슬픈 이별을 하게 됐다.

막내딸 지연양은 구조됐으나 베트남 출신 아내 한윤지씨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권씨와 혁규군은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권씨의 형 권오복씨는 "어린 조카 지연이가 처음에는 자기만 빼고 이사한 줄 알고 떼를 쓰다가 어느 순간 가족들이 죽은 걸 알고 말을 안 꺼내더라"며 "지연이가 나중에 가족이 사무치게 그립고 의지할 데가 필요할 때 찾아갈 수 있게 동생과 혁규 무덤이라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 단원고 2학년 조은화

단원고 조은화양 어머니 이금희씨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미수습자 수습을 호소해왔다.

전교 1등이자 집에서는 애교 많은 막내딸을 자랑스러워하던 평범한 엄마 이씨와, 가족이나 남한테 좀처럼 화낼 줄을 모르던 성실한 아빠 조남성씨 가정도 세월호 이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남편 조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대학 신입생이던 아들도 자퇴했다.

이씨는 "2014년 11월 정부가 수색 종료를 선언하고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해체한 이후 어찌할 줄을 몰라 한참 더 팽목항에 있다가 잠시 안산 집에 올라갔는데 친언니가 찾아왔다. 언니가 '네가 은화를 포기할 애가 아닌데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하는데 순간 정신이 들었다"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이씨 부부는 팽목항을 지키며 정부에 미수습자를 찾아달라고 호소하는 동시에 틈날 때마다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세월호 수색과 인양 시점, 방법 등에 대한 논란이 커질 때마다 한없는 무력감을 느꼈던 이씨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해양·조선 전문가들을 만났다.

대구 지하철 참사 실종자 가족 등과도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조언을 주고받았다.

남편이 걱정할까 봐, 다른 가족들이 더 힘 빠질까 봐 일부러 큰소리로 웃으며 지난 3년을 버틴 이씨.

새빨간 실핏줄이 도드라진 얼굴과 퉁퉁 부은 발목이 세월호 사고 해역과 팽목항에서 바닷바람에 맞서왔던 지난 세월을 말없이 알려줬다.

이씨는 "죽은 자식을 찾은 부모가 다른 부모에게 미안해하고, 나만 마지막까지 남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과 고통을 겪으며 3년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 3년간 미수습자들을 모두 찾을 때까지 다른 가족에게 힘이 돼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며 "모두 가족을 찾고 떠나면 그때는 나도 집에 돌아가 우리 아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든 자식을 지켜주는 부모라는 걸 보여주고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말했다.

areu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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