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프로야구 KBO리그의 첫 외국인 사령탑 제리 로이스터(65)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구도(球都) 부산의 사직구장을 '사직노래방'으로 바꾼 주인공이다.
2008년 롯데 감독으로 부임해 두려움 없는 야구로 3년 내리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며 '가을 잔치'의 감동을 선사했다.
그러나 세 번 모두 준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들어 더는 팀에 남아 있지 못했다.
그의 선 굵은 야구는 인기를 끌었으나 세기가 부족한 야구는 팀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기지 못했다.
거포 이대호를 중심으로 외국인 타자 카림 가르시아, 호타준족 김주찬, 베테랑 조성환, 중장거리포 강민호와 홍성흔이 이끈 롯데 타선은 KBO리그 최강이었다.
손민한, 송승준, 장원준, 라이언 사도스키 등이 버틴 투수진은 로이스터 감독 선발 야구의 주축이었다.
한국, 미국, 일본프로야구 3개 나라 사랑탑이라는 첫 이정표를 세운 트레이 힐만(54) 현 SK 와이번스 감독은 KBO리그의 두 번째 외국인 사령탑이다.
일본 니혼햄 파이터스(2003∼2007년) 감독 시절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2008∼2010년)의 감독을 지낸 흔치 않은 이력을 자랑한다.
2006∼2007년 니혼햄의 퍼시픽리그 우승을 지휘하고 2006년 일본시리즈마저 제패했을 때엔 일본인보다 더 세밀한 야구를 펼친다는 평가도 들었다.
힐만 감독이 올해 KBO리그 11경기에서 보여준 첫 색깔은 로이스터 감독만큼 인상적이지 못하다.
당시 탄탄한 전력을 갖춘 로이스터 감독이 개막 4연승으로 멋지게 데뷔한 것과 달리 힐만 감독은 개막 6연패 수렁에서 겨우 탈출했다. 13일 현재 SK는 4승 7패로 두산 베어스와 함께 공동 8위에 처졌다.
에이스 김광현이 팔꿈치 수술로 전열에서 이탈했고, 새 외국인 투수 스콧 다이아몬드는 자녀 출산 문제로 미국을 다녀온 바람에 19일에야 데뷔전을 치른다.
외국인 타자 대니 워스는 어깨 통증과 타격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가는 등 현재 SK의 전력은 로이스터 감독 부임 당시 롯데 전력보다 크게 떨어진다.
다시 말해 힐만 감독이 특유의 색깔을 보여주기에 여건이 좋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만, SK 관계자의 전언과 경기 전·후 인터뷰로 힐만 감독의 캐릭터를 가늠할 순 있다.
SK 관계자들은 힐만 감독이 사람을 끄는 매력을 지녔으며 상황 대처 능력이 빠르다고 평했다.
더그아웃에서 늘 손뼉 치며 선수들에게 기를 불어넣던 로이스터 전 감독과 달리 힐만 감독은 늘 조용하고 신중한 표정이나 구단 관계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선수들과 격의 없는 장난으로 팀을 하나로 잘 묶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골프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는 점도 로이스터 전 감독과 다르다.
한 관계자는 "힐만 감독은 선수의 컨디션이 나쁘다 싶으면 오랫동안 한 자리에 기용하지 않고 타순 변동 등을 곧바로 추진한다"면서 "수비 시프트를 펼치다가도 밀어치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 타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볼 카운트에 따라 시프트를 조정하는 등 상황에 따라 대처를 달리한다"고 소개했다.
힐만 감독은 데이터 신봉자다. 경기 중 낯선 우리나라 타자들의 타격 성향 등을 직접 필기해 자료를 축적한다.
SK의 주루 잔혹사를 끝낸 것도 현재까지의 성과다. 지난해 71회로 주루사 1등이던 SK는 올해에는 한 번도 주루사를 내지 않았다.
히트 앤드 런 작전 때 타자는 삼진으로 돌아서고 1루에서 2루로 가던 주자가 여유 있게 잡히는 일이 허다했던 SK는 올해 도루를 줄인 대신 진루타 때 한 베이스를 더 가는 과감한 주루로 방향을 바꿨다.
SK의 문제점을 간파한 힐만 감독이 지휘봉을 잡자마자 세밀하게 체질을 바꾼 결과라는 구단 내부 평가도 나온다.
SK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분명 '뭔가' 있는 감독"이라면서 그 비기를 펼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힐만 감독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과 미국프로야구를 관통한 그의 지도 철학이 한국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 자리잡았다.
스프링캠프에서 마무리 투수로 낙점한 서진용을 계속 신뢰하는 대목에선 힐만 감독의 뚝심도 볼 수 있다.
12∼13일 두 경기 연속 끝내기 안타로 롯데를 꺾은 뒤 힐만 감독은 "선수들이 점점 끈끈한 모습을 보여준다"며 "이 분위기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또 서진용을 계속 신뢰한다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감독이 그 팀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최소 1년은 걸린다고 한다.
힐만 감독이 니혼햄 지휘봉을 잡은 첫해 성적은 리그 5위였다. 이듬해 리그 3위로 팀을 올렸으며 부임 4년째이던 2006년 마침내 일본을 제패했다.
풍부한 경험을 앞세운 힐만 감독이 자신의 독특한 야구 색을 비룡군단에 입혀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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