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박성제 특파원 =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인 1986년 미국의 스무살 청년이 메인 주의 한 도로에 차를 세운 뒤 숲으로 사라졌다.
부끄러움이 많았지만 똑똑했던 이 청년은 27년 뒤 경찰에 체포될 때까지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철저히 은둔생활을 하면서 먹거리나 읽을거리를 훔치기 위해 산아래 통나무집까지 내려갔다가 '아주 드물게' 다른 사람의 눈에 띄기는 했다.
별로 비싸지 않은 물건을 도둑맞은 사람들은 이 청년을 '북쪽 연못의 은둔자'(North Pond Hermit)라고 불렀다. 휴가를 즐기려고 고산지대를 찾았다가 통조림, 부탄가스, 옷가지 등을 도둑맞은 사람들은 큰 손실은 아니었지만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숲에서 은둔하면서 장년을 거쳐 어느새 중년이 된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2013년 경찰에 체포됐다. 그의 도둑질에 잔뜩 화가 난 한 사람이 펼친 작전에 걸려들어 결국 쇠고랑을 찬 뒤에야 숲에서 나왔다.
그는 왜 숲에서 은둔생활을 했을까. 왜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입을 닫아버렸을까. 캐나다와 국경을 맞댄 메인 주의 살을 에는 추위는 어떻게 견뎠을까.
그가 체포된 이후에 미국인들이 숱한 의문을 가졌지만 해답을 찾기는커녕 추론할 실마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절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이런 의문을 검찰이 조사할 필요도 없었거니와 조사했다고 하더라도 27년동안 세상을 멀리 한 그의 입에서 답이 나올리 만무했다.
지난달 출간된 '숲속에 사는 낯선 남자'(The Stranger in the Woods)는 나이트와 관련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게 해 준다. 교도소에 갇혀 있는 그를 수십차례 면회하면서 그의 속마음을 짐작하게 된 저자가 그의 심경을 옮겨놓았다.
저자는 2015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트루 스토리'(True Story)의 실제 모델인 마이클 핀켈이다.
저자의 이력도 예사롭지 않다. 세계최고의 신문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뉴욕타임스 기자였던 그는 2001년 아동노예노동과 관련한 커버스토리를 쓰면서 자신이 인터뷰한 여러명의 어린이를 하나의 유령인물로 조합한 것이 탄로나 이듬해 해고됐다.
그렇게 부끄러운 이름으로 기록됐던 그의 이름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2005년. 오리건 주에서 아내와 자식을 모두 살해한 살인마가 자신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이유를 캐기 위해 감옥을 찾았다가 살인마의 이야기를 다룬 '트루 스토리'를 썼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다룬 이야기는 10년 뒤인 2015년에 같은 이름의 영화로 태어났다.
저자가 '또' 교도소를 드나들며 인터뷰한 끝에 내 놓은 신간 '숲속에 사는 낯선 남자'는 고등학교 졸업 뒤 경보시스템 설치일을 하던 청년이 말없이 사라진 이야기로 시작한다.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 1천번 이상 남의 물건을 훔친 이야기, 경찰에 체포된 이후 새로 시작하게 된 속세의 어려움도 전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27년동안 그가 살았던 A형 텐트는 인근의 휴가용 통나무집에서 걸어서 3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등산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호수에서 노를 젓는 카누 애호가들의 기합소리도 들리는 거리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세상과 결코 등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터리를 훔친 것은 라디오를 통해 뉴스를 듣기 위해서였다. 휴가객의 통나무집에서 읽을거리를 가져다가 최신 뉴스도 숙지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지하 생활자의 수기'(Notes from the Underground)는 그가 가장 좋아한 책이었다.
그는 세상과의 단절을 원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원하지 않았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언론이 앞다퉈 소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15위까지 선정하는 베스트셀러 논픽션 부문에는 4주 연속 이름을 올렸다. 크노프(Knopf) 출간. 20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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