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학제개편 등 아이디어 많지만 '교육 본질'에 집중해야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가 본질…교사 양성체제부터 손봐야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고유선 기자 = 인공지능(AI) '알파고' 쇼크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많이 등장한 화두는 바로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일 것이다.
이를 위해 최우선으로 논의되는 것이 바로 교육개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갈 '미래인재'를 길러내려면 낡은 교육 시스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선 주자들도 교육공약을 발표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수식을 달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절대평가화 혹은 자격고사화 등 입시 개편을 거론하기도 하고, 학제를 파격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정답일까.
교육계에서는 지금껏 가장 혁신적이라고 평가받는, 김영삼 정부 시절 '5·31 교육개혁안'(1995년)이 나온 지 20여년이 흐른 지금, '제2의 5·31 교육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그러한 교육개혁은 단지 수능제도를 바꾸고 학제를 개편하자는 '대선용 구호'로 될 일이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것, 다시 말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에 대한 논의부터 차근차근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교육계 원로인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선 4차 산업혁명의 의미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명예교수는 김영삼 정부의 대통령 직속기구였던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으로 5·31 교육개혁안의 밑그림을 그리고 1997∼98년 교육부 장관을 지내며 교육안을 실행에 옮긴 장본인이다.
그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언제부터인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는데 사실 불확실성을 키워드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따라서 대선 후보들이 섣불리 내놓는 공약은 엉터리"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명예교수는 "5·31 교육개혁안 중에서도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게 있을 만큼 교육개혁은 점진적 과제"라며 "4차 산업혁명이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부터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내고 현재 한국교육학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성열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 역시 입시·학제개편 등 주장에 대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1957년 소련이 세계 첫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렸을 때 미국이 보인 반응을 떠올린다면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지금 우리가 어떤 논의를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스푸트니크 쇼크'에 빠진 미국은 국가 개조 프로젝트에 나서면서 교육 제도도 전면적으로 손질했다. 기존의 생활중심, 경험중심 교육을 '교육과 지식의 본질'에 집중하는 학문중심 교육으로 대대적인 방향 전환을 한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도 더는 지식을 입시용으로 가르쳐선 안 된다"며 "예기치 못한 상황이 자꾸 튀어나오는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지식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새롭게 재구성해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그런 논의가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교육을 하는 이유는 결국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함인데 만약 '대학을 굳이 가지 않아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며 "차기 정부는 국민에게 교육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무엇을, 어떤 비전으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결국 학교 수업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이고, 이를 위한 핵심은 교사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즉 현재의 교사양성 체계부터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인데, 대선 후보 중 누구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없다는 데 대해서도 교육계에선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역시 교육부 장관 출신의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결과보다 과정 중심의 수업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걸 제대로 가르치고 평가할 교사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사범대도 로스쿨처럼 교원전문대학 체제로 바꾸고, 졸업하면 임용시험 대신 2년간 수습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등 교사양성 체제를 혁신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수능도 1994학년도에 처음 실시됐을 땐 찬양 일색이었지만 3∼4년이 흐른 뒤부터 '학교가 따라가지 못한다'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학교는 준비가 안 됐는데 입시부터 바꿨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지적은 당장 7월 새 수능제도 개편안 발표를 앞둔 현 상황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교육부는 현재 중3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1학년도부터 수능체제를 개편하기로 하고 7월에 확정안을 발표할 예정인데, 현장 준비 없이 또다시 제도부터 바꾸면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대비 교육을 한다면서 정작 그 핵심인 교사는 노량진에 가서 공부하는 현실은 맞지 않는다"며 "교사가 바뀌려면 최소 7년 이상의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입학본부 전문위원을 지낸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점수 경쟁에서 벗어나려면 수능은 절대평가로 가는 게 맞다"면서도 "수능이 절대평가가 되면 대학은 수능만으로는 학생을 뽑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학생부 평가가 지금보다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며 학교수업과 평가방법 혁신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가 변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일선 교사들도 대체로 동조했다.
서울 오산고 박정준 교사는 "주어진 당면 과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PBL(Project 또는 Problem Based Learning) 유형의 수업이 확산해야 한다"며 "기존 교사들은 거의 재교육 수준으로 다시 배워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배 교수는 "학교와 교사한테만 미룰 것이 아니라 산업계와 대학도 변해야 한다. 특히 대학은 명문고 학생을 알음알음 더 뽑으려는 욕심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yy@yna.co.kr, cin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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