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북한이 또 '벼랑 끝' 전술을 들고 나왔다. 선제타격 경고까지 실린 미국의 '전략적 도발' 중지 요구를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한성렬 북한 외무성 부상은 태양절(김일성 생일) 전날인 14일 AP통신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미국이 무모한 군사작전을 한다면 우리는 DPRK(북한)의 선제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그는 또 "(핵실험은) 우리 최고지도부에서 결심할 문제"라면서 "최고지도부가 결심하는 때, 결심하는 장소에서 핵실험이 있게 될 것"이라고 강변했다. 미국의 거듭된 경고에 굴하지 않고 핵실험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더 "악랄하고 호전적"이라면서 "트럼프는 우리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는데 문제를 만드는 것은 미국"이라고 억지 주장을 폈다. 북한 정권이 얼마나 무모하고 호전적인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선전 책동이 아닐 수 없다.
생떼를 부리는 북한의 행태가 새삼스러울 건 없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해 이젠 식상할 정도다. 하지만 이번엔 주변 정세가 많이 다르다. 지금의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상상 속의 어떤 일도,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우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미국의 경고 수위가 어느 때보다 높다. 지난주 미·중 정상회담 이후로는 중국의 대북 압박도 눈에 띄게 가중됐다. 예측하기 어려운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 결정 스타일도 큰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만찬을 하면서 시리아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명령했다. 그러고 곧바로 칼빈슨호 등 핵항모 전단을 한반도와 가까운 서태평양 해역에 재배치하도록 했다. 북한의 도발을 막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미국 정부와 정치권에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북 선제타격 얘기가 나왔다. 이런데도 북한이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한성렬 부상의 '전쟁 불사' 발언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불안하고 초조한 속마음이 기세등등한 표정의 위장 가면 뒤에 감춰져 있는 것 같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에서 핵과 미사일은 정권 유지의 마지막 보루나 마찬가지다. 만성적인 생활고에 시달려온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체제 선전 도구가 바로 핵과 미사일이다. 북한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맞서려면 핵과 미사일이 필요하다고 내부에 선전해 왔다. 북한이 미국의 반복된 타격 경고에 맞서 '일전 불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말처럼 쉽게 공격하지 못하리라는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한 내 미국 시민과 주한미군은 북한의 잠재적인 볼모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 미국과의 전쟁이 두렵지 않을 리 없다. 가능성이 아무리 낮다 해도 실제로 미국과의 전쟁이 터진다면 김 위원장한테는 모든 것의 종말이 될 수 있다. 이런 복선이 뒤엉켜 있기에 북한과의 '강 대 강' 대치는 대개 '치킨게임' 양상으로 귀결된다. 그 심리전에서 북한은 거의 항상 이겼다. 상대의 반복된 몸조심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북한은 이번과 같은 '벼랑 끝' 도박에 습관적으로 몸을 던진다.
치킨게임에선 보통 잃을 것이 더 많은 쪽이 진다고 한다. 북한은 이번 대치 국면에서도 그런 결과를 내심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군사적 공격은 미국한테도 '최후의 수단'일 수 있다. '최후의 수단'은 실제로 사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적어도 현 상황에선 꼭 사용해야 하는 이유보다, 쓸 수 없는 이유가 더 많을 수 있다. 만약 북한이 그렇게 수를 읽고 끝까지 매달릴 경우 승착이 될지 패착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협상의 달인'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북한의 '벼랑 끝' 술책이 이번에도 통할 수 있을까. 결과는 머지않아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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