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국립자치대 연구결과…"인간의 정치의제에 고통받는 것은 비도덕적"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 중인 미-멕시코 국경장벽이 건설되면 800종의 야생동물이 생존에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14일(현지시간)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UNAM)에 따르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콘크리트 장벽이 건설되면 인근 지역에 서식하는 최소 800종의 야생동물을 비롯해 자연 생태계에 큰 위협을 가할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800종 중 미국을 상징하는 흰머리 독수리, 회색 늑대, 아르마딜로, 재규어, 대형 고양잇과 동물(big cat·빅 캣) 등 140종은 멸종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됐다.
아르마딜로는 가죽이 딱딱한 동물로 공격을 받으면 몸을 공 모양으로 오그린다. 빅 캣은 애리조나 주까지 걸쳐 있는 소노라 사막의 고산지대에 10마리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다.
인위적인 국경장벽 설치로 야생동물들의 활동범위가 반으로 줄어들면서 번식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근친 교배로 유전자 다양성이 낮아져 멸종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정 야생동물의 멸종이나 개체 수의 현저한 감소는 먹이 사슬을 파괴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연구를 총괄한 헤라르도 세바요스 교수는 "미-멕 국경은 산, 정글, 해안과 다양한 생태계로 이뤄져 있다"면서 "수백만 년 동안 자유롭게 이동하며 사냥과 번식을 해온 야생동물들이 인간의 정치적 의제로 고통을 받는 것은 너무나 비도덕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경장벽은 놀라운 자연환경을 창조한 진화의 원칙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불법이민 차단이라는 국경장벽 건설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더 효율적이며 자연 생태계에 덜 해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바요스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최근 6개월간 티후아나에서 텍사스 사이의 국경지대를 돌아다니며 현장조사를 했다.
국경장벽 건설에 따른 자연 생태계 파괴에 대한 우려는 미국에서도 나온다.
애리조나 주 투산 소재 환경보존단체인 생물다양성센터와 애리조나 주 출신의 라울 그리잘바(민주) 의원은 최근 투산 연방법원에 국경장벽의 환경·재정적 여파를 겨냥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정부기관들이 트럼프가 구상하는 국경장벽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국가환경보호정책에 부합하는지도 검토해달라고 주장했다.
미-멕 국경장벽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대선 공약이다. 불법이민과 마약밀매를 막기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에 최소 5.5m에서 최대 9m의 장벽을 설치하고 비용을 멕시코가 대도록 하겠다는 게 트럼프의 구상이다.
현재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텍사스 남부를 따라 멕시코만까지 이어지는 미국-멕시코 국경은 총 길이만 약 3천145㎞에 달한다.
이 중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1천㎞ 구간에는 이미 펜스 등 여러 구조물이 설치돼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나머지 구간 중 자연적 경계를 제외한 1천610㎞ 구간에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할 계획이다.
penpia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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