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진영 때리기' 가속…찬반 양측 지지자 모두 "우리가 승리할 것"
"국민투표가 국론분열 부추긴다" 우려·비판 목소리도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터키 개헌안 국민투표를 이틀 앞두고 이스탄불 대로 곳곳은 찬반진영의 캠페인 열기로 뜨거웠다.
'터키의 명동', 탁심광장·이스티클랄거리부터 시슐리구(區) 역세권으로 이어지는 대로는 개헌 찬반 진영의 대형 현수막과 홍보물로 가득했다.
대형 쇼핑몰과 사원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개헌을 추진하는 여당 정의개발당(AKP)과 이에 반대하는 야당 공화인민당(CHP)이 설치한 캠페인 부스가 나란히 맞붙었다.
찬성 진영은 물량면에서 반대 진영을 압도했다.
외부에 비날리 이을드름 총리 얼굴 사진과 찬성을 뜻하는 'Evet' 문구가 담긴 대형 유세차량이 동원됐다.
부스에서는 차와 사탕, 볼펜, 가방 같은 기념품과 홍보물을 가득 쌓아 놓고 행인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CHP 부스는 차량과 물품에서는 열세가 확연했지만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찬가를 부르며 구호를 외치는 자원봉사자들의 열기는 더 뜨거웠다.
기자가 찾은 거리 유세 현장 주변 시슐리는 전통적으로 야당성향의 지역이다.
터키의 청담동격인 니샨타시에는 부유층과 지식인이 많고, 아르메니아계 커뮤니티가 자리 잡아 세속주의 CHP 지지세가 강하다.
이스탄불 미마르시난대학에 다니는 한인 유학생 정에스더씨는 "다른 지역에서는 야당의 반대 캠페인이 정부의 대대적인 찬성 캠페인에 확실히 밀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거리 유세에서 만난 찬반 양측의 운동원들은 모두 승리를 확신했다.
개헌 찬성 홍보물을 나눠주던 자원봉사자 윔뮈에이넨 바샤르르(56·여)씨는 "60% 이상 지지율"로 개헌안이 통과되리라 낙관했다.
사립학교 교장인 바샤르르씨는 "터키가 발전하려면 대통령제 개헌이 꼭 필요하다"면서 "외국(서방)은 터키의 발전을 원치 않기 때문에 개헌을 방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0m 떨어진 반대 진영 부스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귈한 이다레지(50·여)씨 역시 승리를 확신했다.
이다레지씨는 "터키에 민주주의가 지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운동원으로 자원했다"면서 "AKP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15년간 집권했지만 이번에는 반대표가 더 많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이번 개헌의 핵심은 터키의 정치권력구조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대선과 총선을 5년 주기로 동시에 실시하기에 한 정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 대통령제 특유의 견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대통령이 법률에 준하는 행정명령을 제정할 수 있고, 사법부의 인사권에도 막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임기간은 최장 2029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찬성이 다소 앞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격차가 크지 않고 부동층이 많다.
유세 현장을 방문한 CHP 소속 하이리 이뇌뉘 시슐리구청장은 "사람들이 속마음을 털어놓지는 않아서…. 솔직히 도저히 예측을 못 하겠다"고 털어놨다.
투표일이 임박하고도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구도가 전개되자 AKP 지도부의 발언수위는 더욱 고조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제1야당 CHP의 케말 클르치다로을루 대표가 쿠데타 발생 당일 쿠데타 세력과 내통했다며 개헌 반대 진영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앞두고 반(反)서방, 반세속주의 메시지를 반복·강화하며 지지율을 제고하는 전략을 택했다. 개헌 반대 진영은 외세·쿠데타세력과 결탁해 국가발전을 방해하려 한다는 인식을 주려 애썼다.
이에 따라 국민투표가 논란을 종식하고 국론을 통일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분열을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14일 오후 유세 현장 인근에서 만난 터키 유력지의 기자 A씨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51%만 얻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지도자들이 분열을 조장하는 현상이 터키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라면서 "에르도안 전략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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