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연합뉴스) 권훈 기자 =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해마다 스타가 끊임없이 배출해냈다.
그러나 올해는 스타 기근 우려가 컸다. 이렇다 할 대형 신인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는 국내에서 단 두 차례 대회를 치르고 사라질 조짐이다.
16일 경기도 용인 88골프장에서 열린 삼천리투게더 오픈에서 새내기 박민지(19)는 '슈퍼루키'로 우뚝 섰다.
2라운드부터 공동 선두에 나선 박민지는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감 속에서도 선두를 고수했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압박감을 이겨내고 세 차례 연장전에서 살아남아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박민지는 4라운드 18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 연장전에 합류했다.
박민지는 세번째샷을 치기 전에 캐디에게 "내가 몇 등이냐"고 물었다. 캐디가 "선두가 11언더파이고 18번홀에서 버디를 잡아야 연장을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꼭 버디를 잡아야겠다"고 다짐한 박민지는 "너무 떨렸지만, 꾹 참고 남은 60m를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보낼까에 집중했다. 결과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 긴박했던 순간을 돌아봤다.
박민지는 "사실 겁도 많고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편인데 경기 때는 표정이 드러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면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박민지는 국가대표 출신이다. 지난해 태극 마크를 달고 세계 여자 아마추어 팀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채를 잡은 박민지는 그러나 이름없는 그저 그런 선수로 주니어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고교 2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힌 게 전환점이 됐다. 40∼60명에 이르는 상비군은 엘리트 아마추어 선수로 가는 문턱이다.
박민지는 고교 3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전국 대회 우승도 그때 처음해봤고 해외 대회 출전도 그때 처음 경험했다.
박민지는 주니어 시절 최경주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면접 때는 고생한 생각에 울기만 했고 실기 테스트 라운드를 망쳤지만 뽑혔다. 인성과 장래성을 본 최경주 재단 골프단 이경훈 단장의 안목은 남달랐다. 이 단장은 그때부터 박민지의 코치로 인연을 맺었다.
폭발적 성장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세계 여자 아마추어 팀 챔피언십 우승 덕에 KLPGA 정회원 자격을 테스트 없이 손에 넣은 박민지는 시드전에서도 8위를 차지해 거뜬하게 투어에 입성했다.
88골프장 꿈나무 장학생으로도 선발됐다. 2년 동안 88 골프장 연습장과 코스를 무료로 이용했다.
"88 골프장이 늘 연습하던 장소여서 편한 마음으로 경기했다"는 박민지는 우승의 원동력으로 "88골프장을 구석구석 파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88골프장은 특히 그린이 까다롭다. 빠르고 단단하다. 박민지는 "여기 그린에서는 욕심내고 덤비면 큰일 난다. 그걸 잘 알기에 조심스럽게 공략했다"면서 "그린 플레이가 우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민지의 어머니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 기적의 은메달을 딴 원조 '우생순' 여자 핸드볼 대표팀 주전 골게터 김옥화(59) 씨다.
박민지는 "용모와 체격뿐 아니라 운동선수로서 마음가짐은 모두 엄마한테 물려받았다"고 밝혔다.
은행원을 은퇴하고 지금은 사업하는 아버지 박재기(58) 씨는 스포츠와 인연이 없지만 뛰어놀기 좋아하는 활달한 막내딸에게 골프채를 쥐여주며 골프에 입문시켰다.
박민지는 "어머니는 내가 골프를 시작한 뒤 자기 인생이 없어졌다. 1년 365일 나만 따라다니고 있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돈이 많이 드는 골프이기에 경제적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박민지는 이번 시즌에 앞서 '우승 있는 신인왕'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제 목표를 '두 번 우승한 신인왕'으로 조정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골프 하면 박세리였다면 앞으로는 골프 하면 박민지라는 이름 석 자를 사람들이 떠올리는 게 인생의 꿈"이라고 박민지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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