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 시장 4곳 돌며 '親서민' 민생행보…"민심 바뀌었다" 호소전
"'서민대통령' 맘에 든다, 화끈하다" vs '악수 거절'에 "여기선 부정적"
'제2의 고향' 대구에서 환대…"저렇게 똑똑한 사람 어딨나"
(서울·대전·대구=연합뉴스) 배영경 기자 = 5·9 '장미대선'의 출발 총성이 울린 17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다.
예년 같으면 추위 걱정을 해야 했을 각 당 후보는 굵은 빗방울 속에서도 첫 공식 선거운동 개시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종횡무진으로 바닥 표심을 공략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민대통령'을 표방하며 첫날부터 서울, 대전, 대구에서 모두 4곳의 전통시장을 들르는 강행군을 하느라 우산과 모자에도 비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오전 6시 20분께 국내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에 도착한 홍 후보는 수산물 점포들을 둘러보며 "새벽 몇 시에 나오시나?", "장사는 잘 되는가"라고 물으며 민생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가락시장은 서민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고생이 많으시다"라며 상인들을 다독인 뒤 "오늘 새벽 가락시장에 들른 것은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새벽 시장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민'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이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도 소탈하고 친(親)서민적인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주력하는 듯했다.
처음 들른 상점에서 점주가 건넨 바닷가재를 들어 올리며 "어이쿠, 이거 살아있네"라고 감탄사를 내뱉는 모습은 평범한 이웃 아저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어 펄떡이는 광어를 두 손으로 들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다른 가게에서는 홍어를 가리키며 "이건 홍어입니까"라고 묻고, 손으로 잡아보라는 권유에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시장 내 식당에서 순대국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한 홍 후보는 충무공을 모신 충남 아산 현충사를 찍고 대전 역전시장을 방문, 전통시장·소상공인 관련 공약을 발표하며 상인들의 환심을 샀다.
역전시장과 연결된 중앙시장에서는 상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밑바닥 민심을 훑었다.
정장을 벗고 빨간색 당 점퍼와 모자까지 착용한 홍 후보는 닭 다리를 뜯고 잔치국수로 점심을 해결한 뒤 막걸리와 커피까지 마시며 '먹방'을 찍었다. 시장 내 신발가게에서는 운동화를 한 켤레 골라잡았다.
'TV에서 보는 것보다 더 미남이시다'라는 한 여성 상인의 덕담에 홍 후보는 "저보고 미남이라고 하는 건 처음 들어본다. 우리 집사람만 저보고 미남이라고 하고 밖에서는 처음 듣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대놓고 '서민 속으로'를 외친 것이나 다름없는 홍 후보의 첫날 행보를 바라보는 서민들의 표정은 엇갈렸다.
대전 역전시장의 한 60대 여성 상인은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여기 시장은 서민들이 사는 곳"이라면서 "홍 후보의 '서민 대통령'이라는 문구가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가락시장의 한 상인은 "바른말을 잘하니까 대통령이 되면 화끈하게 잘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고, 다른 상인은 홍 후보에게 "진짜 응원한다. 화이팅"이라고 외치며 토마토를 선물했다.
다만 경기불황으로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허덕이는 다수의 상인에게 대선은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였다.
비까지 내려 가뜩이나 불편한 좁은 시장 골목을 누비는 유세단과 취재진은 장사에 방해가 될 뿐이라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비치는 이들도 있었다. 홍 후보가 식사하는 동안 주변의 일부 상인들은 "언제 가느냐"고 물으며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대구로 무대를 옮긴 홍 후보는 칠성시장에서 상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인사를 한 뒤 2·28 기념 중앙공원 앞에 놓인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가 비에 젖은 소녀상의 얼굴을 빨간색 수건으로 정성 들여 닦아준 뒤 진달래색 담요를 어깨에 둘러줬다.
역시 당 색깔인 빨간색 우비로 소녀상을 덮어주려다가 잘되지 않자 원래 있던 비닐우산을 다시 씌워주고 인사를 했다.
이날 홍 후보는 "밑바닥 민심이 달라졌다"는 메시지를 반복하며 이런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양강구도'로 대선을 규정하는 여론조사기관과 언론을 거듭 비판, 대역전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실제 바닥 민심의 움직임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는 듯했다.
서울과 충청권만 해도 일반 여론조사 결과와 두드러지게 다른 기류가 감지되지 않았으나, 홍 후보가 1차로 공을 들이고 있는 TK(대구·경북)에서는 들썩이는 분위기가 현장에서 체감됐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만난 한 50대 시민은 "이곳 민심은 왔다 갔다 한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사이인데 아무래도 안 후보에게 쏠리고 있다"며 "홍 후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크다"고 전했다.
첫 일정이었던 가락시장 방문에서는 조개를 파는 한 젊은 상인이 홍 후보의 악수 요청에 손을 내저으며 거절한 뒤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반면 홍 후보가 학창시절을 보낸 '제2의 고향'이자 당의 정치적 '텃밭'인 대구 시민들은 출마 선언 후 한 달 새 네 번째로 내려온 그를 반갑게 맞았다.
대선 첫 집중유세가 열린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는 500여 명의 시민이 모였고,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가를 틀며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한 홍 후보의 대선 출정을 축하했다.
유세 시작부터 "홍준표! 대통령!"을 외친 청중은 연설을 마친 홍 후보가 무대에서 넙죽 큰절을 올리자 환호성을 질렀다.
집중유세를 끝낸 홍 후보가 차량 탑승을 위해 동성로 거리를 100m가량 걸어가는 동안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고, 한 20대 청년은 홍 후보를 졸라 '셀카'를 찍기도 했다.
유세장 인근에서 만난 한 70대 시민은 "대구에서 후보들의 인기가 다 고만고만하다"면서 "젊은 세대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인기가 좀 높은 편이지만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홍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60대 여성은 "여기는 홍 후보가 돼야 한다는 분위기다. 저렇게 똑똑한 사람을 놔두고 누굴 찍나"라며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이제 대구에서 정치를 못할 줄 알라고 해라. 보수를 흩어지게 만든 책임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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