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주요 도시서 모두 '반대' 우세…"정치적 기반 이스탄불서 패배, 충격"
압도적 캠페인에도 간신히 51%…최근 총선 지지율보다 10%p 낮아져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개헌 '숙원'을 실현했지만 국민투표 결과를 뜯어보면 곳곳에 경고신호가 감지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창당한 정의개발당(AKP)은 대통령중심제 개헌을 본격 추진한 이래 우파 민족주의행동당(MHP)과 연대하고 대대적인 개헌 지지 캠페인을 펼쳤다.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 노출 면에서 개헌 찬성 홍보는 반대 홍보를 압도했다. 찬성 광고가 다섯 번 나오는 동안 반대 광고 한 번을 보기 힘든 수준으로 격차가 컸다.
길거리 홍보에서도 목이 좋은 곳에는 으레 에르도안 대통령과 비날리 이을드름 총리의 대형 현수막과 포스터가 자리 잡았다. 반대 진영의 현수막은 물량에서 달리고 크기도 작았다.
국가비상사태에서 캠페인이 진행돼 반대 진영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지 못했다는 불만도 컸다.
제2야당이자, 쿠르드계 등 소수집단을 대변하는 인민민주당(HDP)은 지도부와 단체장이 대거 투옥돼 조직을 제대로 가동하기 힘들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유럽평의회 의회협의회(PACoE)가 파견한 투표 감시단은 개헌 찬반 양측에 공정한 캠페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17일 평가했다.
이러한 불공정 경쟁이 벌어지고 부정투표 논란까지 일었는데도 찬성은 51.4%에 그쳤다.
2015년 11월 총선 당시 AKP(49.5%)와 MHP(11.9%)의 지지율 합계 61.4%보다 10%포인트나 낮다.
최대 도시 이스탄불, 수도 앙카라, 제3도시 이즈미르 등 주요 3개 대도시에서 모두 패배했다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쿠르드계가 많은 동부와 남동부뿐만 아니라 에게해와 지중해 연안도시, 수도와 주변지역에서 반대투표가 우세했다.
특히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치적 기반인 이스탄불에서도 반대 투표가 더 높게 나온 것은 AKP 지도부에 충격을 줬다고 터키 일간 휘리예트가 분석했다.
이스탄불은 상징성이 클 뿐만 아니라 지역 민심이 곧 터키 전역 민심의 가늠자로 여겨졌다. AKP에서 "이스탄불에서 이기면 터키 전체에서 이긴다"가 속설로 통했다.
이달 들어 에르도안 대통령이 수시로 이스탄불을 찾아 공을 들인 것도 이때문이다.
야권 일각에서는 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에르도안 대통령의 승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리막길에 접어든 그의 운명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HDP 소속파이크 야기자이 의원은 프랑스24와 인터뷰에서 "2015년 총선 결과와 비교해보라"면서 "이번 국민투표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승리라기보다는 몰락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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