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흑인·라티노 다민족 비즈 믹서 개최…"커뮤니티 경계 허물어야"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1992년 4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시내 한인타운.
흑인 청년 로드니 글렌 킹을 집단 폭행한 백인 경관 4명에게 배심원단의 무죄 평결이 내려진 순간, 성난 흑인들이 일제히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의 분노는 백인이 아닌 한인에게로 향했다.
흑인 시위대는 한인타운 내 상점들을 닥치는 대로 약탈했고 방화를 일삼았다.
그해 5월 3일까지 이어진 '4·29 흑인 폭동'으로 사망자 53명, 부상자 4천여 명의 인명 피해와 함께 7억 달러가 넘는 물적 피해를 남겼다.
피해를 본 한인 업소 수가 2천300여 곳, 피해액은 3억∼4억 달러에 달한다는 집계가 나왔다.
특히 로드니 킹 사건과 비슷한 시점인 1991년 한인상점에서 한인 주인 두순자 씨가 시비 끝에 10대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즈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이른바 '두순자 사건'과 맞물리면서 4·29 폭동은 인종 간의 극단적인 폭력으로 치달았다.
한흑(韓黑) 갈등으로 표면화한 이 사건은 당시 재미 한인사회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인명과 물적 피해뿐 아니라 그동안 어렵사리 미국 사회에 정착해가던 한인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준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LA 시내 사우스 웨스턴 가에 자리 잡은 LA 한인회관.
로라 전 LA 한인회장과 이은 LA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흑인 커뮤니티를 대표한 마이클 엘리슨-루이스 FAME 처치 선임자문관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한인 이민사의 가장 큰 아픔인 4·29 폭동 발발 25주년을 맞아 과거의 상처를 씻어내고자 뜻깊은 행사를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19일 한인타운 내 상징적 장소로 꼽히는 다올정에서 '다민족 비즈니스 믹서' 행사를 열기로 한 것이다.
로라 전 회장은 "한인사회가 흑인 커뮤니티, 라티노(히스패닉) 커뮤니티와 더불어 이런 비즈니스 믹서 행사를 여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며 "각 커뮤니티의 경계를 넘어 상호 간의 활동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행사는 커뮤니티 바깥의 친구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면서 "블랙, 라티노 커뮤니티와의 상시적 교류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은 회장은 "로드니 킹에 대한 무죄 평결로 촉발된 사건으로 한인타운이 큰 손해를 봤고 엄청난 가슴의 상처를 갖게 됐다"면서 "4·19 폭동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건이며 이제 역사의 일부로서 타인종과의 화합을 위해 기억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흑인 공동체 대표로 파트너십에 참여한 엘리슨-루이스 선임자문관은 "지난 25년 전의 상처를 지우고 공동체 간의 차이를 메우고자 하는 한인 커뮤니티의 노력에 감사드린다"면서 "다시는 25년 전과 같은 분쟁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은 다 같다"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는 LA에 본부를 둔 흑인·히스패닉계 상공회의소 조직들이 다수 참여한다.
한인회 측은 오는 29일 4·29 폭동 25주년에 즈음해서는 각 인종 대표들이 참여하는 평화 대행진, 폭동 피해자 등을 초청한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oakchu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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