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처럼 일 시키고 학대…'돈 벌어서 갚는다' 노예계약 강요
야구방망이 폭행까지…'사기·상습폭행·특수상해' 혐의 구속
(안산=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지적장애가 있는 고등학교 동창을 노예처럼 부리며 억대의 돈을 빼앗고 상습적으로 폭행한 30대가 사기, 상습 폭행, 특수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인면수심의 피의자는 어리숙한 고교동창에게 대출까지 강요해 돈을 뜯은 것도 모자라 조선소 등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있지도 않은 채무를 벌어서 갚으라며 최장 10년간 피해자 급여의 모든 권리를 갖는 내용의 '노예계약'까지 서슴지 않았다.
검찰에 따르면 경기도 안산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던 송모(33) 씨는 2012년 7월 안산의 한 커피숍에서 우연히 지적 장애가 있는 고교 동창 A(33)씨를 만났다.
송씨는 지적 장애가 있는 A씨가 세상 물정에 어둡다는 점을 이용, 가게에서 닭을 튀기게 하고 청소를 시키는 등 일을 시키며 돈을 뜯기로 마음먹었다.
지적 장애가 있는 A씨의 지능은 IQ 79 수준이나 작은 회사에서 일하며, 20살 때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해 스스로 가계를 꾸리는 사회인이었다.
송씨는 A씨에게 "내가 운영하는 치킨집을 인수해 운영해봐라. 2천800만원만 있으면 된다. 네가 인수하면 도와주겠다"며 마치 운영권을 넘겨줄 것처럼 꾀었다.
송씨는 2013년 3월 치킨집을 폐업할 때까지 약 7개월간 "네가 사실상 사장이다. 운영 자금이 필요하니 돈을 가져오라"고 A씨를 속여 모두 5천900만원을 받아 챙겼다.
A씨가 금융기관에서 대출받고 집 전세보증금까지 빼 마련한 돈이었다.
하지만 송씨가 혼자 치킨집을 운영할 때 이 가게의 월 매출은 1천500만원, 월 이익은 120만원 수준이었다. 추가 운영 자금이 필요하다는 건 돈을 뜯어내려는 거짓말이었다.
A씨가 이 기간 송씨에게서 받은 돈은 1주일에 약 2만원 수준의 생계비가 전부였던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송씨는 그러나 검찰 조사에서 매달 10만원 정도의 용돈을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송씨를 만나기 전까지 전세보증금 2천500만원짜리 집에 살며 채무 없이 평범한 생활을 했던 A씨는 집 보증금도 날리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A씨로부터 더 이상 뜯어낼 돈이 없을 것으로 보이자 송씨는 치킨집을 폐업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월급을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송씨는 "치킨집 운영을 돕느라 쓴 돈이 2천만원이 넘고 그 돈 이자까지 갚아야 한다"며 A씨에게 거제도 조선소 일자리를 알려주며 벌어서 갚으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치킨집 인수자금, 운영자금 등 명목으로 성씨가 애초 약정했던 2천800만원을 초과하는 5천900만원을 A씨로부터 챙겼기 때문에 두 사람 간 채권채무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송씨는 치킨집 폐업하고 한 달이 지난 2013년 4월 자신이 소개해 준 조선소에서 돈을 벌어 갚되 불가피한 사정이 아닌 이상 퇴사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으로 강요, A씨와 '노예계약'까지 체결했다.
이렇게 속아 넘어간 A씨는 2013년 4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3년 2개월간 거제, 경기 등 여러 곳에서 일하며 번 돈 8천300여만원을 송씨에게 또 뜯겼다.
송씨는 상습적인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2012년 치킨집 운영 당시엔 '왜 치킨을 빨리 못 튀기냐', '양념을 포장지에 흘리면 어떡하냐', '주문 전화를 똑바로 못 받느냐', '청소를 왜 똑바로 안하느냐' 등의 이유로 2013년 3월까지 가게 문을 닫은 새벽 시간에 주로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고 빗자루로 종아리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
송씨는 또 2013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일요일을 제외하고 수시로 A씨에게 안산의 모 유통회사 사무실에 출근해 자신의 일을 대가 없이 돕도록 강요했다.
게다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등 이유로 지난해 6월 중순부터 1주일간 매일 이곳 사무실에서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로 수차례 때려 3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수원지검 안산지청 형사1부(부장검사 김연곤)는 송 씨를 사기, 상습폭행,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18일 밝혔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염전에서 강제노역을 시키고 수시로 폭행한 신안 염전 노예사건(2014년)과 축사에서 강제노역을 시키고 임금을 가로챈 청주 축사노예 사건(2016년) 등처럼 지적장애인을 범행에 이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송씨는 A 씨로부터 가로챈 돈을 자신의 생활비, 유흥비, 취미생활인 음악 장비 구입에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고교를 졸업한 후 20살 때부터 부모에게서 독립해 혼자 집을 얻어 생활해왔으나 가족과 연락은 거의 하지 않고 지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송씨의 범행은 A씨가 야구방망이로 온몸을 맞는 등 폭행 피해 정도가 심해지자 지난해 6월 말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가 동생과 연락이 닿아 경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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