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관영언론 '수상한 오보'…"마크롱 끌어내리기에 美대선 재연 우려"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를 일주일도 채 앞두지 않은 상황에서 친(親)러시아 성향의 프랑수아 피용 공화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러시아발 가짜뉴스도 막판 스퍼트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세비 횡령 의혹으로 한때 지지율이 급락했던 피용은 최근 우파 유권자들의 결집 등에 힘입어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는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대표와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장관을 근소하게 뒤쫓고 있다.
하지만 피용의 지지율 반등에 그를 지지하는 러시아발 가짜뉴스도 덩달아 기승을 부리면서 러시아의 개입으로 논란이 됐던 미국 대선이 프랑스에서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피용 등 친러 후보들에 대한 표심을 자극하는 가짜뉴스들은 러시아 관영통신 스푸트니크와 국영방송 RT를 중심으로 최근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스푸트니크가 최근 프랑스어판 기사에서 모스크바에 기반을 둔 기관의 설문조사를 인용해 "피용이 여론조사에서 다시 선두로 올라섰다"도 보도한 것이 대표적 예.
하지만 이는 르펜과 마크롱이 지지도 1, 2위를 다투는 다수의 여론조사 내용과 동떨어진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이런 러시아발 가짜뉴스들은 모두 반(反)러시아· 친유럽연합(EU)을 내세운 마크롱을 끌어내리고, 친러 성향의 피용이나 르펜을 대선 결선에 진출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피용은 유럽과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을 주장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의 해제를 요구하는 대표적 친러 인사로, 피용의 당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피용의 결선 진출이 좌절될 경우 반미·반EU를 주창하는 르펜을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
르펜은 러시아 은행으로부터 900만 유로(109억원 상당) 가량을 선거자금으로 차입하고, 지난달 푸틴 대통령과 만남을 가지는 등 러시아에 매우 우호적이다.
하지만 이런 피용과 르펜을 제치고 마크롱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대두하면서 러시아 매체들은 피용에 우호적인 뉴스는 물론 마크롱에게 악의적인 뉴스도 마구잡이로 퍼트리고 있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반마크롱 전선의 선봉에 선 이는 푸틴의 오랜 정치적 동지인 니콜라 뒤크 공화당 의원이라고 NYT는 전했다.
그는 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에서 돈 많은 동성애 이익단체가 마크롱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밝히고, 마크롱이 투자은행의 이익을 위해 로비하는 미국의 대리인이라는 글을 기고하는 등 마크롱에 대한 악성루머를 공개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 밖에도 RT 방송은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와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창설자 줄리안 어산지와의 인터뷰를 인용해 위키리스크가 마크롱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입수해 곧 공개할 예정이라는 가짜뉴스를 올렸다가 어산지 측의 반박에 꼬리를 내린 적도 있다.
이런 음해작전은 마크롱 측의 강력한 반박과 콤프로마트(kompromat·약점이 될 정보를 수집하는 정치공작)라는 지적을 받으며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은 블로그·소셜미디어에서 재활용되면서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최근 대선 판도가 르펜·마크롱·피용·장뤼크 멜랑숑 중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박빙 양상으로 전환되면서 가짜뉴스가 실제로 미국 대선처럼 프랑스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두려움이 프랑스 사회에 퍼지고 있다.
진보매체 'Rue89'의 창설자인 피에르 하스키는 NYT에 "미국에서의 현상이 프랑스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류언론에 진력난 유권자들이 유사매체로부터 정보를 얻고 있다며 RT와 스푸트니크가 이런 공간을 비집고 자리를 잡고 있다고 우려했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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