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체격에도 장타력·배짱 빼닮아…같은 코치에게 배워
아직도 2G 휴대폰 사용 "목표 의식 뚜렷한 게 큰 장점"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딱 (김)세영이더라고요."
16일 경기도 용인 88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삼천리 투게더 오픈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한 대형신인 박민지(19)의 스승 이경훈 코치의 말이다.
이경훈 코치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는 김세영(24)을 2011년부터 가르치고 있다.
박민지는 키 159㎝의 작은 체격이다. 하지만 260야드를 거뜬히 때려낸다. 마음만 먹으면 270야드를 넘긴다.
김세영도 163㎝로 그다지 크지 않은 체격이지만 LPGA투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장타자다.
박민지는 2015년 3월에 이경훈 코치를 만났다. 최경주 재단 장학생을 뽑는 선발 테스트 자리였다 . 최경주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인 이경훈 코치는 최경주재단 주니어 골프단 단장을 맡고 있다.
선발 테스트는 면접, 스윙 점검, 그리고 18홀 실전 라운드로 진행됐다.
선발기준은 기량보다는 인성과 가정 형편, 그리고 발전 가능성이 우선이다.
이경훈 코치는 "연습장에서 먼저 (박민지의) 스윙을 봤는데 폼이 이상했다. 백스윙과 폴로스윙이 따로 놀았다. 그런데 공에 힘을 실어 정확하게 맞추더라. 배우기만 하면 정말 잘 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세영이 처음 이경훈 코치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스윙이 엉망이었지만 임팩트 하나만큼은 누구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정확하고 힘이 실렸다.
힘을 실을 줄 아는 임팩트 말고도 박민지는 김세영과 닮은 점이 더 있다.
강한 하체 근육에서 나오는 힘이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로 단련된 김세영과 마찬가지로 박민지는 초등학생 때부터 일찌감치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받았다.
박민지의 어머니 김옥화(59) 씨는 "무슨 운동이든 근력과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판단해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체력 훈련을 시켰다"고 말했다. 김 씨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간판 골게터였다.
박민지는 지금도 대회가 끝나면 이틀 동안은 서너 시간을 웨이트 트레이닝에 할애한다. 맨손 스콰트는 하루에 수백개씩 한다.
약점도 김세영과 판박이다.
박민지는 요즘도 그린 주변에서 어프로치를 할 때 퍼터를 먼저 잡는다. 그린 주변 쇼트게임이 서툴다. 웨지를 이용해 핀을 공략하는 기량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털어놓는다.
김세영도 프로 입문 초기에 그랬다. 장타와 아이언샷은 일품이었지만 쇼트게임 실력은 정상급 선수와 거리가 있었다.
이경훈 코치는 "워낙 샷이 좋아서 쇼트게임 실력이 떨어져도 한두 번 우승은 가능하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선수가 되려면 쇼트게임을 더 연마해야 한다고 말해줬고 본인도 그걸 안다"면서 "쇼트게임이 완성되면 김세영만큼 무서운 선수로 변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지는 별다른 성적이 없는데도 2015년 최경주 재단 장학생과 88 골프장 꿈나무에 차례로 뽑혔다.
최경주 재단 장학생과 88 골프장 꿈나무는 혜택이 많아 주니어 선수들이 선망한다. 최경주 재단은 연간 1천200만 원까지 장학금을 주고 최경주가 직접 지도하는 전지훈련에 데려간다. 88 골프장 꿈나무는 연습장을 무료로 사용하고 골프 코스에서 매일 실전 라운드를 할 수 있다.
박민지가 최경주 재단 장학생과 88 골프장 꿈나무에 선발된 것은 뚜렷한 목표 의식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경훈 코치는 "진솔하고 가식이 없는 성격이다. 간절하고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했고 간절함이 마음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면접 때 박민지는 울기만 했다. 이경훈 코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느낌을 알겠더라"면서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 어렵게 골프를 해온 어린 선수의 마음이 읽혔다"고 설명했다.
88 골프장 이훈 전무는 "바르고 착한 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훌륭한 골프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 의식이 강하게 전달됐다"고 밝혔다.
88 골프장은 꿈나무 선수들에게 매일 마지막 내장객이 티샷하고 나면 뒤이어 코스에 나가도록 배려한다. 88 골프장 황진우 팀장은 "박민지는 꿈나무 선수 중에서도 연습과 실전 라운드에 열심이었다"고 전했다.
박민지는 지금도 2G 피처폰을 쓴다. 카카오톡 계정도 없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도 담을 쌓고 지낸다.
그나마 2G 피처폰도 경기 때는 물론 연습 때도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 집에 귀가해서야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는 정도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머니 김 씨의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다.
어머니 김 씨는 "연습할 때 샷 한번 하고 카톡 확인하고, 스윙 한번 하고 페이스북 들여보고 그러는 자세로는 최고가 될 수 없지 않느냐. 민지는 스물다섯 살 때까지 스마트폰을 사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박민지는 17일과 18일에도 웨이트트레이닝과 샷 연습, 쇼트게임 훈련을 빠뜨리지 않았다.
박민지는 21일부터 경남 김해 가야 골프장에서 열리는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에 출전한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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