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파리 유세서 반이민 정서 자극하는 발언 쏟아내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프랑스 대통령 선거 유력주자인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48) 후보가 나흘 앞으로 다가온 대선 1차 투표를 앞두고 극우주의적 발언을 쏟아내며 막판 세몰이에 나섰다.
1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르펜은 전날 파리 제니트 공연장에서 개최한 유세에서 프랑스 '문명'이 위협받고 있다며 모든 합법적 이민을 중지하고 프랑스식 삶의 방식을 보호하겠다는 공약을 재차 내세웠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FN을 이끄는 르펜은 반(反) 이민, 반(反)유럽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르펜은 연설에서 "여기는 우리 집이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은 모국에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민자들, 심지어 불법 이민자들보다 권리를 적게 누리고 있기 때문"이라며 "프랑스인은 우리 것이 아닌 법이나 관습에 종속되지 않고, 프랑스에서 프랑스인답게 살고 싶다. 프랑스는 국가 정체성을 영속시킬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격앙된 듯 연설 도중 "빌어먹을, 프랑스를 돌려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프랑스 내 이슬람 이민자를 타깃으로 한 작심 발언도 쏟아냈다.
그는 "프랑스에선 우리가 원할 때 언제든지 와인을 마실 수 있다, 프랑스에선 여성이 불순하다며 베일을 쓰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누가 프랑스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유세장을 메운 지지자들은 "여기는 우리 집"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르펜의 연설에 화답했다.
르펜은 이민자에 대한 반감 섞인 연설 끝에 집권 시 가장 먼저 EU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 조약을 탈퇴하고 국경 통제에 나서겠다고 공약했다.
르펜은 솅겐 조약으로 프랑스가 "세계 모든 이민자의 대합실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르펜은 이같은 반이민 구호를 외치면서도 자신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프랑스의 유럽연합(EU) 탈퇴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지층 확대에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대선 초반부터 르펜은 대통령 당선 시 국민투표를 통해 프랑스의 EU 탈퇴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나 상당수 유권자는 이를 부담스럽게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르펜은 파리 유세에서 프랑스의 정체성이나 프랑스적인 삶의 방식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자극하는 전술을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르펜의 아버지이자 FN을 창당한 장 마리 르펜의 전형적인 선거 기법이라고 FT는 설명했다.
르펜의 연설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가 중도 좌파 후보인 에마뉘엘 마크롱을 집중적으로 겨냥한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뤽 루방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교수는 지적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르펜과 마크롱은 박빙의 표차로 1차 투표에서 결선 진출이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두 후보는 2차 투표에서 정면으로 맞붙게 된다.
또한 르펜식 '정체성 정치'는 극좌로 분류되는 장뤼크 멜랑숑 후보와 차별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고 루방 교수는 덧붙였다. 르펜과 마찬가지로 멜랑숑도 반 EU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루방 교수는 "이민 거부는 르펜과 다른 후보를 구분 짓는 부분"이라며 "(르펜의 연설은) 전략적인 행동이다. 1차 투표를 앞두고 이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FN 지지층에 확신을 주는 한편 라이벌 후보들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멜랑숑이 막판 선전하며 지지율을 19%까지 높이자 차별화를 통해 멜랑숑의 입지를 좁히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르펜의 이런 전술이 지지층에는 먹힌 듯하다.
38세 교사인 에밀리오는 "프랑스 정체성이 무너지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당장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FN을 위한 때가 왔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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