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한 무용수에서 문영남·김순옥이 점찍은 배우로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왕가네 식구들' '왔다! 장보리' '내딸 금사월' '우리 갑순이'.
그를 키운 건 팔할이 '막장 드라마'였다.
"막장 드라마 전문 배우"라고 놀렸더니 "그게 바로 제게 행운이었죠"라는 호탕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에게 '막장' 논란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이들 작품은 그의 인생을 바꿨고,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SBS TV '우리 갑순이'를 끝낸 최대철(39)을 19일 광화문에서 만났다.
◇ 어렵게 키운 무용수의 꿈, 사고로 접다
"누나가 넷인데 바로 위 누나가 대학교 사진학과에 다녔어요. 제가 고2 때 누나가 학교 숙제로 저를 모델 삼아 사진을 찍었는데 제가 몸도 좋고 포즈도 잘 취하니까 '야, 넌 무용해야겠다'고 했어요. 공부는 하기 싫고, 어려서부터 할리우드 스타 조니 뎁을 좋아해 연기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 비슷한 무용을 하라고 하니 흥미가 당기더라고요. 그 길로 무용학원을 찾아갔죠."
최대철은 "무용학원에서 춤을 추고 있던 고3 누나의 모습이 너무나 환상적이었고 슬로우 모션으로 두 눈에 들어왔다"며 "그때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돌아봤다.
타고난 소질이 있었는지, 늦은 나이에 춤을 시작했지만 그는 한양대 무용학과에 바로 합격했다.
"무용도 돈이 많이 들지만 학원부터 대학까지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어요.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서 손 벌릴 데가 없었는데 선생님들의 배려로 포기하지 않고 무용을 계속 할수 있었어요. 장학금 받으려고 노력해서 학점을 4.5 만점 받기도 했고, 다른 학생을 지도하는 아르바이트로 제 레슨비를 냈습니다."
하지만 무용수들이 꿈꾸는 동아콩쿠르는 포기해야했다. 수백만원이 드는 작품비, 의상비를 낼 돈이 없어서였다. 그 길로 군대를 갔는데 논산훈련소에서 조교로 복무했다. (훗날 권상우-천정명의 뒤를 잇는 훈련소 조교 출신 배우의 탄생이다.)
제대 후 2004년 제1회 서울-파리국제콩쿠르는 그가 우승을 꿈꾸며 준비한 대회였다. 예선을 1등으로 통과했다. 그런데 본선을 일주일 앞두고 오른쪽 손목 인대 세 개가 끊어졌다.
"지하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다 잠깐 숨 돌리러 1층으로 올라왔어요. 같은 건물 2층에서 인테리어 공사 중이었는데 인부 한명이 커다란 유리를 끙끙거리며 운반하길래 도와주겠다고 나섰어요. 근데 유리가 절반이 깨지면서 제 손목을 강타했죠. 조금만 비켜갔어도 죽을 뻔 했습니다."
오른쪽 손목에 깁스를 했다.
"깁스한 손목을 뒤로 숨기고 춤을 출 수 있는 안무를 부랴부랴 짜서 일주일간 죽어라고 연습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꼴찌였습니다. 충격이 너무 컸죠. 군에서 제대한 뒤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더랬어요. 두 다리에 피멍이 쫙 잡혔었죠. 그런데 꼴찌를 했으니 완전히 좌절했어요."
◇ 무명배우 10년…"포기하려 할때 '왕가네 식구들' 만나"
포기는 빨랐다.
"무용과 가장 관련이 있어보이는 뮤지컬을 노크했어요. 운 좋게 오디션에 붙었고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앙상블을 시작으로 5년간 뮤지컬에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노래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비전이 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연기를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또 오해영'의 송현욱 PD가 연극 '5월엔 결혼할거야'를 보고 그를 KBS 단막극에 출연시켰다. 그게 인연이 돼 2012년 KBS '각시탈'에도 출연했다. 드디어 배우로 자리를 잡게 되나 했지만, 일은 더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결혼한 지 7년째였고, 애가 둘인데 생활고가 심했죠. 가장으로서 이렇게 살 수는 없겠더라고요. 연기는 이제 포기하고 장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송현욱 PD님이 '왕가네 식구들' 오디션이 있다고 지원하라고 연락을 하셨어요. 다음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오디션에 갔는데, 문영남 작가님이 아무것도 믿을 게 없는 저를 발탁해주셨어요. 100 대 1의 경쟁률이었어요. 송 PD님과 문 작가님은 제 인생의 은인입니다."
2013년 '왕가네 식구들'이 50%를 위협하는 높은 시청률로 대대적인 인기를 끌면서 '왕돈' 역을 맡았던 최대철도 마침내 얼굴을 알리게 됐다.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그는 지난 4년간 쉬지 않고 매년 5작품씩 소화했다. 그중 김순옥 작가의 '왔다! 장보리'와 '내딸 금사월'은 시청률이 30%를 넘어섰다.
"어떤 배우가 그러더라고요. '50년간 연기를 해도 출연작의 시청률을 다 합친 게 50%가 넘기 힘들텐데 너는 출연작마다 30~40%'라고요.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그만큼 인기를 끈 작품에 잇따라 출연한다는 게 보통 행운이 아니죠. 제가 인복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소속사도 생겼다. 그는 이범수가 대표를 맡은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와 지난해 계약했다.
◇ '우리 갑순이'로 이미지 변신…"연기 정말 잘하고파"
문영남 작가는 '우리 갑순이'를 통해 최대철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줬다. '찌질이' 역이었던 '왕가네 식구들'의 '왕돈'과는 전혀 다른, 능력있는 '상남자' 역을 '우리 갑순이'에서 준 것이다. 배역 이름은 '조금식'.
"문 작가님이 '조금식'역을 주시면서 지금껏 했던 연기와는 180도 다를 테니 잘 소화하라고 하셨어요. 이걸 잘해내야 앞으로 오래 갈 수 있다고 하시면서요."
이전까지 코믹하거나 못난 역할을 계속 맡아오던 최대철은 '조금식'을 통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이면서도 순정파에, 믿음직한 아빠의 모습을 모두 소화해냈다.
"문 작가님이 쫑파티 때 '잘했다'고 해주셨어요. 너무 좋았습니다. 연기를 정말 정말 잘하고 싶어요. 이제 시작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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