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조윤선 재판 증언…"내가 안 하면 후배들에게 맡겨야 해"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황재하 기자 =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관리했던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 회의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아니면 다른 후배들이 하게 될 일이라는 생각에 업무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고 '양심 고백'을 했다.
우재준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은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 같은 취지로 증언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동료 행정관에게 (블랙리스트 관리가) 위험한 일이라 안 했으면 좋겠다고 심정을 표현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는데, 사실인가'라고 묻자 우 전 행정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우 전 행정관은 "누구나 청와대에 근무하면 남을 위해 일하고 싶어하고,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게 사람 마음"이라며 "그런데 특정 인물을 이념이나 비판하는 성향에 따라 배제해야 하는 업무였기 때문에 그런 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자료를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을 너무나 많이 요구했고 그 결과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동료에게) 토로했던 기억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의를 느끼고도 업무를 계속한 이유에 관해선 "청와대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내가 문제를 일으키면 추천한 분들이 좀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안 하면 다른 후배들에게 일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서 당분간 맡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또 "공무원은 조금이라도 국민에게 보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명단을 만든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고, 만약 한다면 시스템을 통해야지 이런 방법으로 하는 자체가 부당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김 전 실장 변호인이 '범죄로 인식하고 명단을 관리했나'라고 묻자 우 전 행정관은 "법적인 부분은 내가 판단할 게 아니고, 양심의 가책과 부담을 느꼈다"고 답했다.
우 전 행정관은 2014∼2016년 당시 국민소통비서관이던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의 지시로 블랙리스트를 관리했으며 자신이 청와대에서 일하기 전부터 있던 리스트를 인수인계 받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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