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과 다리가 굳어버린 저는 중증장애 선생님입니다"

입력 2017-04-20 07:03  

"팔과 다리가 굳어버린 저는 중증장애 선생님입니다"

근이영양증에도 8년째 교단 지키는 안산대월초 박병찬 교사

"제가 있는 것만으로도 교육…학생들이 꿈과 용기 키우길"

(안산=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 "당신이 교단에 있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에게 교육이 되고 자산이 될 거예요. 포기하지 말아요"





경기도 안산대월초등학교에서 도덕과 영어 교과를 맡은 박병찬(33)씨는 올해로 9년차 베테랑 교사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박 교사가 다른 선생님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팔과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 없이는 거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지체 2급)이란 것이다.

박씨의 장애는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학창시절 학급반장과 전교 회장을 도맡을 정도로 활발했던 그는 교사의 꿈을 품고 경인교대에 진학했다.

얼마 뒤 받게 된 군 신체검사에서 '정밀 진단이 필요하다'며 장애 사실을 알게 되었고 대학병원에서 처음으로 '근이영양증' 판정을 받았다.

근이영양증은 팔과 다리를 시작으로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 나중에는 온몸으로 퍼져 사망하게 되는 '시한부' 질병이나 다름없다.

이 병을 앓는 환자 대부분이 20살 전후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박씨는 이례적으로 근육이 굳어지는 속도가 더뎌 30살 생일을 넘겼다.





그는 "처음 근이영양증 판정을 받았을 때가 교대에 입학한 해였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1년간 휴학한 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교직의 꿈을 접으려고 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깊은 절망에서 그를 꺼내 준 건 대학 동기들과 주치의 교수였다.

동기들은 하루가 멀다고 집으로 찾아와 교육학 서적을 가져다주며 임용시험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10여 년째 인연을 맺고 있는 대학병원 주치의 교수의 조언도 큰 힘이 되었다.

박씨는 "교직의 꿈을 접는 게 어떻겠냐는 제 고민에 주치의께서 '당신 자체만으로 좋은 교육이 된다'며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해주셨다"고 했다.

그렇게 2008년 임용시험에 합격한 박씨는 2009년 안산의 한 초등학교로 부임해 2학년 담임을 맡았다.

그때만 해도 팔과 다리의 근육이 완전히 굳지 않아 벽을 짚고 혼자 걸어 다닐 수 있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일반교사들처럼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수업시간 중 교사가 직접 시범을 보여줘야 하는 부분은 미리 학생에게 도움을 요청해 함께 수업을 진행했다. 체육 활동은 옆 반 교사와 교환수업으로 대체했고 거동이 불편해도 수련활동, 소풍도 일일이 챙겼다.







어느덧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만들어 가고, 학생들이 선생님의 휠체어를 밀어주고, 장애교사와 비장애 학생들이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지금은 전용 교실에서 컴퓨터와 시각자료, 직접 만든 학습지를 활용해 수업을 진행한다. 다른 교사와 다름없이 학부모 대상 공개수업도 한다.그는 "학생들이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다. 단지 '선생님 몸이 좀 좋지 않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당연한 듯 도와주고배려한다"며 "예전에 주치의 교수님이 하셨던 대로 제가 있는 것만으로도 교육이 된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지지도 교직 생활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박씨는 "학부모 상담을 해보면 '걱정했는데 아이가 잘 지내 다행이다'라며 긍정적인 말씀만 해주신다. 지난 8년간 담임 또는 전담교사 교체를요구한 학부모는 단 한 분도 없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학생과 학부모가 하는 교원평가에서도 항상 학교 평균점수를 넘었다.

그의 꿈은 50살이 넘어서까지 교단에 남아 학생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이 '내년에도 저희를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해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출퇴근 길에 넘어져 허벅지 뼈가 부러진 적도 있을 정도로 교사생활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음에도 계속 교단에 남고 싶은 이유다"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에게 바라는 건 '장애교사도 장애를 극복하고 일반교사 못지않게 가르쳐 주셨는데 우리도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얻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직을 꿈꾸다 포기하는 장애인들에겐 "조금 더 힘과 용기를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제가 이렇게 교직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학교관리자와 교육 당국의 배려가 컸어요. 하지만 배려를 기대하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직 불완전하지만 제 요구로 보조인력 지원도 받게 됐어요. 유리 벽이 힘들어 못 하겠다고 포기하지 말고 스스로 그 벽을 깨고 사회구성원으로 역할을 하길 바라요"

작년 기준으로 경기도 장애교원은 918명이다. 중증장애가 72명, 경증장애가 846명이다. 절반 이상이 지체장애 교원들이다.

young86@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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