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가 보수적?…"불의에 맞선 유학자들, 민주화 이끌었다"

입력 2017-04-20 11:50  

유교가 보수적?…"불의에 맞선 유학자들, 민주화 이끌었다"

이황직 숙명여대 교수 '군자들의 행진'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960년 4·19 학생 시위가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4·25 대학 교수단 데모가 결정적 역할을 했어요. 그런데 이 데모를 주도한 인물을 보면 유교 지식인들이 많아요. 이들은 불의의 상황이 닥치면 목숨을 바쳐서 저항하려는 강한 종교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국가의 통치 이념이었던 유교를 신봉한 사람들은 근현대 한국사회 발전 과정에서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한 것일까. 이황직 숙명여대 교수가 이런 의문을 부정하는 주장을 담은 책 '군자들의 행진'(아카넷 펴냄)을 출간했다.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대학교 때부터 동서 고전을 익힌 이 교수는 6년간의 연구 성과를 이번 책에 실었다. 그는 집필을 위해 구한말 의병운동부터 1960년대 민주화 운동까지 유교계의 동향을 학계 최초로 복원했다.

이 교수는 2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4·25 대학 교수단 데모는 유교 지식인들이 일회적으로 집단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며 "교수단 데모는 김창숙과 정인보를 중심으로 유교의 학맥이 이어진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구한말 위정척사파의 움직임이 1919년 '파리장서운동'으로 계승됐다고 말했다. 파리장서운동은 불교계와 기독교계가 주축이 된 3·1 운동 직후 유림이 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보냈던 사건이다.

이후 유교 지식인들은 유도회총본부를 기반으로 활동했고, 우당 이회영을 따랐던 아나키스트들도 유교계에 합류해 독립운동을 벌였다.

일제의 폭압이 끝나고 해방된 뒤에는 유교인들이 각자의 정치 이념에 따라 좌파, 우파, 중도 세력에 합류해 정치운동을 펼쳤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 교수는 "백범 김구가 사망한 뒤에는 김창숙이 재야 세력의 대표 인물로 떠올랐다"며 "이승만 대통령은 유교계를 와해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김창숙과 근대적 교육을 받은 유교 지식인이 결합해 교수단 데모를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유교가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유교 지식인은 사회를 비판하는 불굴의 투사였다"고 덧붙였다.

유교 지식인들의 저항은 1965년 재경 유림단이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박정희 정부는 정신문화연구원을 만들고 충과 효를 내세우는 등 유교 전통을 정치에 수용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 교수는 "1970년대부터는 사회가 급속히 변하면서 종교성을 지닌 유교가 한학이라는 학문으로 바뀌었다"고 진단한 뒤 "유교가 다시 살아나려면 한학을 공부한 지식인들이 시민사회로 나아가 사회 문제에 대한 유교적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통사 형태로 쓴 이번 책의 후속 작업으로 유교 지식인들의 사상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교지성사를 집대성할 예정이다.

696쪽. 2만8천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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