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들, 일상의 혐오와 권태를 까발리다

입력 2017-04-22 11:00  

젊은 작가들, 일상의 혐오와 권태를 까발리다

최영건 장편소설 '공기 도미노'·정영수 소설집 '애호가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감각적 쾌락과 거짓 위안이 판치는 시대에도 어떤 소설들은 여전히 순수한 고통 그 자체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섣부른 치유법이나 모호한 희망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최영건(27)과 정영수(34), 등단 4년차 젊은 소설가들이 혐오와 냉소, 위선과 권태 따위로 구축된 세계를 각자 첫 책에 옮겼다.

최영건의 장편소설 '공기 도미노'(민음사)는 독자에게 적잖은 괴로움을 안겨준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이 서로를 향해 내뱉는 혐오와 냉소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인물들이 가족관계로 얽힌 탓에 혐오는 보다 근본적이고 해소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할머니 복자 아래서 자란 연주가 복자의 애인 현석의 집을 방문하며 시작한다. 할머니와 동거하기로 한 현석을 모시러 간 길이었다. 현석은 대학교수인 아들 원균, 며느리 소현과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연주가 목격한 이들의 모습은 처참하다.

원균의 외도 탓에 서로 날을 세우고 있는 아들 내외를 향해 현석은 아무렇지 않게 욕설을 내뱉는다. 소현은 냉소한다. "이 집 남자들이 그래요. 시아버님이나 남편이나 하여간에 대단한 정력들이지." 결국,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가슴을 걷어차는 난장이 벌어진다.

여섯 장으로 이뤄진 소설은 초점을 조금씩 옮겨가며 인물들의 악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혐오는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왜, 노인네라고 해서 기분 더럽냐? 나한텐 평소에 그 욕을 다 해 놓고 내가 그러니까 기분 더러워?" 할머니 복자는 물론 남자친구 병식과도 가시돋친 말들을 주고받던 연주는 교통사고로 죽고 현석도 곧 세상을 떠난다.

"이 세상에 신이 있어서 지금 당신들 사는 꼴을 보면 뭐라고 하겠어. 나는 당신들하고는 달라." 소현은 홀로 남겨진 복자를 돌보겠다며 찾아가 되뇐다. 하지만 그의 감정도 마찬가지로 혐오에 뿌리를 둔 것으로 읽힌다. 200쪽. 1만3천원.




정영수 소설집 '애호가들'(창비)의 표제작은 스페인 문학 번역가이자 대학강사인 화자의 무기력한 일상을 그린다. 형편없는 학생들에게 중세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일은 지루했고 교수가 된다 해도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화자는 강사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종강 모임에선 대학 후배 오영한이 유학파라는 이유만으로 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신입생 때 스페인어권 작가들의 이름과 대표작을 적어놓고 암기하듯 문학을 익힌 오영한, 그런 후배를 얕잡아보면서도 자괴감에 사로잡히는 화자. 작가는 오영한의 과거와 화자의 현재를 통해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풍자한다.

번역만은 최고라고 자부하던 화자는 출판사 편집부장으로부터 자신의 번역본이 이전 판본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가져온 게 드러나 절판하겠다는 통보를 받는다. 집에 돌아와서는 조교실에 전화를 걸어 오영한의 임용 축하연이 언제인지 묻는다. 질투도 지루함에서 비롯한 무기력을 이겨내지 못한다.

'특히나 영원에 가까운 것들'의 화자는 자동차 창문 스위치를 만드는 공장에서 불량 여부를 검사하는 일을 한다. 스위치 세트를 검사기에 꽂고 버튼을 한번 눌러 정상 표시인 초록불이 뜨는지 확인하는 일이 전부다.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지루한 작업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됐다는 생각에 설렐 정도다.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정지해 있는 분침을 바라보고 있자면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며 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점심시간조차도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에 빠져들었다."

작가는 결국 무한 반복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인물들을 나른하고 만연한 문장과 능청스런 유머에 담는다. 이들과 얼마나 다른 삶을 사느냐고 독자는 물론 작가 자신에게도 묻는 듯하다. 작가의 말이다. "나는 곧잘 지겨워하는 편인데 어느 정도냐면 벌써 인생에 질려버렸다. (…) 사는 건 참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요즘은 꽤나 의욕적으로 살고 있다.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기도 하다." 232쪽. 1만2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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