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없고 여소야대 정국…총리·장관 인사 지연될 가능성
'섀도 캐비닛' 공개 시 공격 빌미 제공·캠프 내 분란 자초할 수도
공개 시 장점도 작지 않아…총리만이라도 공개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다음 달 9일 치러지는 19대 대통령 선거의 당선인은 대선 이튿날 곧바로 대통령에 취임한다.
당선 즉시 대통령 신분이 되기 때문에 대통령 당선인에게만 적용되는 현행 인수위법에 의거해 정식으로 대통령직인수위를 꾸릴 수는 없다.
역대 정부는 인수위를 거치면서 대선 이후 약 2개월의 정권 인수인계 절차를 진행했다.
인수위의 핵심업무는 정부조직 개편과 대통령 취임식 준비 등이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주요 부처 장관 후보의 인수위 자체 검증과 국회 청문회, 국회 동의 등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운영할 주요 인물에 대한 인사도 이 기간에 이뤄졌다.
물론 정치권의 합의에 따라서는 새 정부가 현행 법 테두리 내에서 대통령 임기시작후 30일간 인수위 운영도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여전히 활동기간이 짧은데다 '정식 인수위' 만큼 차분하게 정권출범 준비를 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여소야대 구도를 피할 수 없어 초기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무총리와 내각 구축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외교·국방·통일 장관과 국정원장 등 외교·안보부서 기관장은 새 정부 출범 초 미·중·일·러 등 주요 국가 정상회담 준비에 착수해야 함은 물론, 북한의 도발에도 대비해야 하나 콘트롤타워가 부재(不在)할 경우 여러 문제를 노출할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은 이를 염두에 두고 대선 전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예비내각)을 구성해 이를 발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섀도 캐비닛'은 그림자 내각이라는 뜻으로 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를 대비해 예정해 둔 내각을 의미하며, 의원내각제와 양당제가 정착한 영국 의회에서 유래했다.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에서 섀도 캐비닛을 적용해 총리와 장관을 미리 정해놓을 경우 헌법에 보장된 국무총리의 장관 제청권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최근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 주변 상황과 인수위에서 총리와 장관 후보자를 검증할 여유가 없는 현실을 고려할 때 내각을 미리 공개해 대통령과 함께 검증받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 대선후보들 섀도 캐비닛 공개에 난색 = 각 후보 선대위 역시 대선 직후 바로 국정운영에 착수해야 하는 만큼 섀도 캐비닛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실제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당 기간 지지율 1위를 지킨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은 대선 전 '섀도 캐비닛'을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문 후보 캠프는 1천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을 비롯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장·차관 출신이 대거 포함된 자문단 '10년의 힘' 등 탄탄한 인재풀(Pool)을 자랑한다.
문 후보는 2월1일 서울 노원구청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초청 강연에서 "전부 다 확정은 안 되더라도 대체로 어떤 분들과 국정을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강의 모습은 보여줘야 한다"며 섀도 캐비닛 공개를 시사했다.
당시 문 후보는 당과 협의해 예비내각을 구성하는 것은 물론, SNS를 통해 일반 국민에게서 직접 입각 대상자들을 추천받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섀도 캐비닛 발언이 나온 이후 '이미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고위 공무원들이 문 후보 캠프에 줄서기를 한다는 소문도 퍼졌다.
급기야 확인되지 않은 섀도 캐비닛 명단이 일명 '지라시(사설 정보지)'를 통해 유포되면서 문 후보 측은 사실상 예비내각을 공개하지 않는 쪽으로 돌아섰다.
문 후보만이 아니다. 다른 후보 캠프도 섀도 캐비닛을 공개했을 때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21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국무총리로 염두에 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즉답을 피했다.
홍 후보는 "저는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우리당 지지율이 약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이 잘 안 나온다"며 "막바지에 가서 집권 가능성이 보일 때 섀도 캐비닛도 발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속해있는 정당이나 이념은 달라도 홍 후보의 발언이 다른 대선후보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온다.
사실 집권 후 정부 요직에 앉힐 인사들의 목록을 미리 마련해두는 것은 역대 어느 대선 캠프에서나 하던 일이다. 그러나 이를 대선 전 발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무엇보다 대선 전 섀도 캐비닛을 발표할 경우 발표와 동시에 예비내각 구성원에 대한 혹독한 검증이 시작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인수위에서 두 달간 인사검증을 통해 발표한 총리·장관 후보자도 국회 인사청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하는 경우가 허다한 마당에 예비내각 후보자는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상대 후보 진영에서 예비내각 후보자의 결격 사유라도 발견해 공격해 들어올 경우, 대선 후보 본인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또 캠프 내부의 역학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 후보 캠프의 조력자들은 집권 후 새 정부에서 요직을 맡을 것으로 기대할 수밖에 없다.
섀도 캐비닛을 발표할 경우 명단에서 빠진 캠프 내부 인사들이 불만을 나타내거나 후보의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캠프 내 특정 계파가 요직을 독식한 것으로 비칠 경우 내부 분란을 자초할 위험도 있다.
때문에 현재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들은 한결같이 섀도 캐비닛을 공개하는 데 난색을 보인다.
◇ 예측 가능한 정치 선보여…총리만이라도 공개해야 = 그럼에도 섀도 캐비닛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다소 위험부담을 떠안아야 하고 분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나 섀도 캐비닛을 공개했을 때의 장점도 작지 않다는 주장이다.
후보 본인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인물을 총리로 임명할 경우 득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수 진영의 후보가 진보 성향이 강한 총리 후보를 지명할 경우 사회통합의 메시지를 던져 중도·진보층의 표를 흡수할 수 있다.
또 예측 가능한 정치를 선보여 유권자의 판단을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2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섀도 캐비닛을 발표하면 인선을 통해 후보들이 어떤 정책에 관심을 두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예를 들어 후보가 복지정책에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어떤 사람을 장관에 앉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며 "유권자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섀도 캐비닛 공개는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내각 전체를 공개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적어도 국무총리 후보만이라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용인대 최창렬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일종의 러닝메이트 개념으로 봐서 최소한 총리는 누구로 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헌법상 총리가 장관을 제청해야 하기 때문에 총리 인사가 지연되면 장관 인사까지 모두 지연된다"며 "향후 장관 인사까지 고려하면 총리만이라도 미리 공개해 어느 정도 검증을 받는 것이 새 대통령에게도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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