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범죄 노렸지만 사소한 실수로 CCTV에 꼬리 밟혀
(경산=연합뉴스) 이덕기 기자 = 권총을 갖고 시골 마을 한적한 곳에 있는 농협 지점에 들어가 금품을 빼앗아 달아난 범인이 55시간 만에 붙잡혔다.
사건은 지난 20일 오전 11시 55분께 경산시 남산면 자인농협 하남지점에서 발생했다.
직원 4명이 근무하는 소규모 지점이나 그나마 직원 1명은 정기 건강검진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 점심시간을 앞둬 손님은 없었다. 전국 대부분 소규모 농협 지점처럼 보안요원도 없었다.
복면한 범인은 남자 직원 1명과 여자 직원 2명만 있던 지점에 뛰어들어 자루를 던지며 돈을 요구했다.
약 1시간 전 자전거를 타고 지점 앞에 도착해 호시탐탐 틈을 노리던 범인은 총기를 들이밀며 "(돈을)담아"라고 수차례 외쳤다.
직원들이 두려움에 떨며 창구에 있던 일부 돈을 담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남자 직원 한 명이 달려들자 범인이 재빨리 몸을 피하며 이들을 위협하기 위해 쐈다.
총구는 지점 내부에 있던 복사기 쪽으로 향했고 탄피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으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이윽고 이들이 극도의 공포 속에 현금 1천563만원을 허겁지겁 담아주자 범인은 직원 3명을 창구 뒷면 벽면 쪽에 있는 금고에 가둔 뒤 미리 준비한 자전거를 몰고 4분 만에 유유히 사라졌다.
용의자는 지점을 빠져나와서도 마치 농협에서 돈을 찾아 나오는 고객처럼 여유롭고 태연한 모습이었다. 현장을 신속히 떠나려고 허둥대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침입 당시 농협 직원이 1분 만에 경비업체와 연결된 비상벨을 눌렀으나 물리적 한계로 현장 검거는 실패했다.
경찰이 경비업체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범인이 현장을 떠난 지 5분이 지난 뒤였기 때문이다.
그는 농로를 따라 종적을 감춘 데다 외국인인 것처럼 단어 위주로 짧은 말만 한 것으로 알려져 수사에 혼선이 빚어졌다.
차, 오토바이 등 기동성을 우선 확보해 치밀하게 준비하는 일반 강도와 달리 자전거를 이용한 점 등은 혼란을 부채질했다.
사건이 나고 만 하루가 지나도록 좀처럼 단서가 나오지 않자 경찰도 다소 당황했다.
그러던 범인 행적이 꼬리가 밟힌 것은 21일 오후다.
경찰은 현장 주변 CC(폐쇄회로)TV 영상을 분석하던 중 사건 발생 시간대에 자전거를 싣고 가는 1t 트럭 한 대가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범행 현장에서 수 ㎞ 떨어진 곳에 1t 트럭을 세워둔 범인은 자전거를 싣고 현장을 빠져나오는 수법으로 완전범죄를 노렸다. 그러나 덮개가 없어 자전거가 그대로 드러나 실패했다.
차적 조회에 나선 경찰은 차주가 사건 현장에서 8㎞가량 떨어진 곳에 사는 김모(43·농업)씨인 것으로 확인했다.
경찰은 이때부터 소재 파악에 나서 김씨가 자기 집에 트럭을 세워둔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망을 좁혔다.
당일 행적 등을 수사한 경찰은 22일 낮 김씨가 승용차를 이용해 고속도로로 가는 것을 포착하고 추적했다.
집에서 약 200㎞ 떨어진 충북 단양까지 따라간 경찰은 김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오후 6시 47분께 긴급체포했다.
사건 발생 후 약 55시간만이다.
김씨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고 범행을 순순히 자백했다. 경찰은 김씨를 상대로 공범 여부, 범행 동기, 총기 출처 등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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