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억 산양삼 8천만원 보상"…갈등 '화약고' 공용수용제

입력 2017-04-24 07:16  

"25억 산양삼 8천만원 보상"…갈등 '화약고' 공용수용제

개발 우선주의에 밀려 수용 절차 대폭 간소화…공익성 뒷전

까다로운 개발 절차 우회 법률 100개 난립…저가 보상 불만

(전국종합=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10년 동안 애지중지 키운 25억원어치 산양삼 보상금이 8천만원이라니 말이 됩니까?"






충북 충주시청 앞 광장에는 요즘 온종일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란 외침이 울려 퍼진다.

두 달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시위를 벌이는 안관준(58) 씨 부부는 13만7천여㎡에 산양삼을 재배하다 2014년 충주 메가폴리스 산업단지 조성 사업으로 토지를 강제 수용당했다.

안 씨는 투자비 13억원과 상품 가치 등을 고려하면 보상금액이 25억원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감정평가 결과는 8천90여만원이었다. 울타리, 철재 관로 보상액까지 합쳐도 8천950여만원밖에 안 됐다.

협의가 결렬돼 충북도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 재결(裁決) 신청을 했지만 보상액은 바뀌지 않았다.

사업 주체인 충주 메가폴리스 주식회사는 손실보상금을 공탁하고 부동산 명도 가처분 결정을 받아내 공사에 들어갔다.

결국, 안 씨는 행정소송을 냈지만 1, 2심 재판부 모두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에 불복한 안 씨의 상고로 대법원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공익 목적의 대규모 개발 사업 때 이뤄지는 공용수용 제도를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공용수용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토지 등 개인 재산권을 강제로 취득하는 제도다.

강제 철거 과정에서 6명이 숨진 2009년 용산 참사, 보상 불만에서 비롯된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공용수용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만큼 개선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자료를 보면, 2012년 이후 최근 5년간 각종 공익사업에서 수용 재결 6천903건, 이의 재결 5천502건 등 1만2천405건의 토지가 토지주의 의사와 관계 없이 강제 매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결은 보상 협의가 이뤄지지 않거나 결렬될 경우 강제 매수를 위해 하는 행정 행위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1976년부터 2011년까지 정부가 매입한 공공용지 면적은 5천384㎢로, 서울시 면적의 약 9배, 제주도의 3배에 달한다.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 수용권을 부여받은 민간 사업자가 수용한 면적까지 합치면 실제는 훨씬 많다.

기업도시 사업에서 민간이 직접 수용한 면적은 약 33.6㎢로 여의도 면적의 11.6배, 일반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민간이 단독으로 수용한 면적은 여의도의 42배인 122.7㎢에 이른다.

공용수용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용 절차가 갈수록 사업 시행자 중심으로 간소화돼 사업 대상이 크게 확대됐다는 것이다.

민간 수용이 광범위하게 허용되다 보니 강제 수용권을 부여하는 사업 주체와 종류가 계속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엄격한 토지보상법상 '사업 인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사업자에게 수용권을 내주는 특별규정을 둔 개별 법률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했다. 이런 법률이 100개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사업 인정은 일정 절차를 거치는 조건으로 사업 시행자에게 수용권을 설정해주는 것이지만, 대부분 사업은 실시계획 승인 등 다른 처분을 통한 '사업 인정 의제(擬制)'로 까다로운 절차를 피해 간다.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따르면 2012∼2016년 1만2천405건의 토지 수용 중 사업 인정 절차를 거친 건수는 0.4%(50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승인이나 인허가 취득으로 번거로운 사업 인정 절차를 대체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승인, 인허가 주체가 곧 사업 시행자가 되는 경우가 발생해 공익성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

개별 법률에 적시된 민간 수용 목적을 보면 산업개발, 지역개발 등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 사업 종류도 도로, 아파트, 산업단지에서 개별 공장, 골프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간소화한 공용수용 절차는 과다 수용이란 부작용도 낳는다.

필요하지 않은 토지까지 일단 수용했다가 사업 예정지를 축소하거나 취소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사유재산 침해와 막대한 사회경제 비용 낭비를 초래한다.

철저한 공익성 검증 없이 추진하다 취소해 매몰 비용만 1조원으로 추정되는 용산 개발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2011∼2013년 산업단지로 지정됐다 해제된 면적은 1천230만㎡에 달했다.






저가 보상에 따른 이주민 생활 기반 상실은 당사자의 박탈감과 사회적 불만을 증가시켜 극단적 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주민이 예전 생활에 준하는 상태를 회복하도록 보상해야 하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보상 기준이 모호해 갈등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많다.

'생활 재건' 지원이라는 원칙만 있을 뿐 이를 뒷받침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실질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 시혜성 조치로 여겨 축소 보상하는 경우가 많다.

건물 소유자에게는 과다 보상, 세입자는 과소 보상이 이뤄지는 일도 허다하다.

토지보상법과 시행규칙은 일정 요건을 갖춘 주거용 건축물 소유자를 이주대책 대상자로 정하는 동시에 주거 이전비 대상으로 인정해 중복으로 보상한다.

반면 세입자 주거 이전비는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 명목 가계지출비 4개월분으로 정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공공수용제 부작용을 극복해 사회 갈등을 줄이려면 개발 우선주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사업 인정 의제 대폭 축소, 사업 시행자와 사업 인정 의제 처분자 분리, 수용 재결 단계 공익성 검증 강화, 보상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호준 KDI 연구위원은 "권리 의식이 높아지고 보상 기대 심리가 커지면서 공공수용을 둘러싼 갈등이 증가 추세에 있다"며 "심각한 갈등을 초래할 위험이 큰 개발 편의 위주의 현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k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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