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서 경운궁(옛 덕수궁) 현판 특별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선포 120주년을 맞은 대한제국은 경복궁이 아닌 덕수궁(德壽宮)을 법궁으로 썼다. 고종 황제는 1897년 10월 12일 덕수궁에서 제국을 선포하고 환구단까지 행진을 벌였다.
당시 덕수궁은 '경운궁'(慶運宮)이라고 불렸다. 이곳에는 본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 있었으나 선조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잠시 머물면서 궁이 됐고, 광해군이 1611년 경운궁이라고 명명했다. 이후 일제의 압력으로 1907년 황제가 된 순종은 궁의 명칭을 덕수궁으로 바꾸고, 자신은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10년간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던 '경운궁'의 현판 13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현판으로 보는 대한제국 황궁, 경운궁'을 24일부터 5월 14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연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지금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大漢門)이 원래는 '대안문'(大安門)이었음을 알려주는 현판이 나온다.
1899년 3월부터 1906년 4월까지 현재의 대한문에 걸려 있었던 대안문 현판은 가로 347㎝, 세로 124㎝ 크기다. 대한제국 시기에 대신을 지낸 민병석이 '크게 편안하다'는 의미로 썼다. 이 '대안문'은 1906년 4월25일 '대한문'으로 바뀌었으나 누가, 어떤 이유로 바꿨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다.
또 경운궁 남쪽에 있었던 '인화문'(仁化門) 현판과 고종이 드나들었던 북동쪽 문인 '포덕문'(布德門) 현판도 공개된다. 인화문 현판은 가로 351.5㎝, 세로 122㎝로 대안문 현판과 크기가 비슷하다.
전각 현판 중에는 '중화전'(中和殿) 현판에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 현판은 오늘날 즉조당에 1898년 2월부터 걸렸는데, 1902년 새로운 중화전이 건립되면서 내려졌다.
이와 함께 석조전 뒤쪽에 있는 서양식 건물인 '구성헌'(九成軒) 현판, 고종의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처소였던 '영복당'(永福堂) 현판, 고종의 어진을 모셨던 '흠문각'(欽文閣) 현판도 살펴볼 수 있다.
태평로와 서울광장에 있었던 경운궁 궐내각사(闕內各司, 황실을 보좌하는 관청)의 '회계원'(會計院) 현판과 '육군법원'(陸軍法院) 현판도 전시된다.
경복궁 야간 특별관람 기간인 24일부터 5월 7일까지는 경내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도 오후 9시30분까지 문을 연다.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꿈이 담긴 공간이지만, 고종이 1919년 승하한 뒤에는 규모가 축소되고 많은 전각이 헐렸다"면서 "대한제국의 현판을 처음 한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를 통해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돌아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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