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선 "25년 만에 새앨범…유재하가 음악의 길 열어줬죠"

입력 2017-04-24 13:11   수정 2017-04-24 17:44

정혜선 "25년 만에 새앨범…유재하가 음악의 길 열어줬죠"

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은상 출신…미발매 자작곡 담은 신보 '꿈속의 꿈'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두 번째 앨범이 세상이 나오기까지 25년이 걸렸다.

1989년 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나의 하늘'이라는 곡으로 은상을 받은 싱어송라이터 정혜선(50)의 이야기다.

이 대회로 가요계에 입문한 그는 1992년 레이블 하나음악에서 전곡을 자작곡으로 채운 1집을 내 실력파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등장을 알렸다. 이어 1995년 2집의 녹음을 마쳤지만, 제작자로 나섰던 사진작가 김중만의 개인 사정으로 앨범은 출시되지 못했다.

그리고 정혜선은 1998년 결혼과 함께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이름마저 생소해진 그가 1집을 낸 지 25년 만에 새 앨범 '꿈속의 꿈'을 발표했다.

22년 전 미발매된 2집의 10곡 중 4곡을 추려 두 명의 젊은 프로듀서와 새롭게 편곡하고 다시 불러 세상에 꺼내놓았다. 20년도 넘은 곡인데도 그의 허스키하면서도 몽환적인 음색은 파격적이란 느낌마저 든다. 언뜻 한영애를 떠올리다가도 확연히 구분되는 선명한 창법이 있다.

최근 종로구 수송동에서 만난 그는 "'음악 할 팔자가 아닌가 보다' 했지만 20여 년간 다른 세계에 격리된 느낌이었다"며 "가정을 꾸리고 아들을 키우며 충실한 가정주부로 살았다. 10년 안에 다시 노래할 줄 알았는데 강산이 두 번 변할지 몰랐다. 나의 인내심과 책임감이 대단했던 것"이라고 웃었다.

새 앨범은 조동진과 조동익, 장필순, 박용준, 고찬용, 조동희 등 하나음악 뮤지션들이 다시 뭉친 레이블 푸른곰팡이에서 출시했다.

"앨범을 준비하며 조동진 선배님을 찾아가 들려드렸어요. 선배님이 '가장 끼가 많고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결혼과 함께 사라졌다'고 하셨죠. 그러면서 '시간은 중요한 게 아니니 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어요."

다시 뮤지션의 길로 회귀할 수 있었던 건 기다려준 소수의 팬 덕분이다.

그의 1집은 온라인에서 수십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음반수집가들 사이에서 귀한 앨범이 됐다. 이 앨범은 조동진이 디렉팅을, 조동익이 편곡을 맡고 박용준, 장필순, 조규찬 등의 '고수'들이 연주와 코러스로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신인의 가치를 드높였다.

특히 과거 홍보용 CD로만 방송가에 배포됐던 2집의 '꿈속의 꿈'은 모던록의 진수로 주목받으며 천리안 음악동호회 두레마을이 '우리가 죽기 전에 들어야 할 가요 100'곡에 선정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제 음악을 인정해준 분들이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 나이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죠. 아이가 훌쩍 컸다는 생각에 더 늦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자식 같은 곡들이 언젠가 세상에 나와 타인의 기쁨이 돼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거든요."




록을 기반으로 모던록과 록발라드 등을 아우른 새 앨범의 타이틀곡은 가장 애착을 가졌던 '꿈속의 꿈'이다.

몽환적인 전자 사운드가 펼쳐지는 이 곡에서 하이톤으로 아련하게 음을 끌어올리는 독특한 창법을 그는 '플라잉 창법'으로 이름 붙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간 단 한 번도 노래를 시도하지 않았다"며 "박용준 씨가 목소리가 더 좋아졌다고 해주더라. 녹음실에 들어서는 데 느낌이 편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온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변함없는 목소리뿐 아니라 노랫말 역시 20여 년이 지난 지금 시대에 들어도 어색하지 않다. 시대를 타지 않는 '휴머니즘'의 메시지가 관통하기 때문이다.

"제가 20대에 도를 닦았나 봐요. 하하."

마치 랩을 하듯 가사를 읊조리는 첫 곡 '아침신문'은 자연파괴, 전쟁 등 충격적인 뉴스가 난무한 세상에서 희망을 제안한다. 마지막 부분에는 아름다운 내용의 뉴스를 써내려가듯 컴퓨터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하루도 사건이 없는 날이 없을 정도로 인간사가 더욱 복잡해졌다"며 "세상이 암담해도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희망을 놓지 말자는 이야기다. 어른들이 노력해서 다음 세대를 위해 그 혼돈을 줄여나가자는 시각으로 쓴 곡"이라고 소개했다.

'사랑할 수 있다면'에선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인생의 의미가 충분하다고 응원한다.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무엇 무엇 때문이라고/ 그런 구차한 변명들 이젠 그만 (중략)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사랑할 수 있다면')

'4가지 방법'에서도 권태롭고 답답할 때, 재수 없고 황당한 일을 당했을 때, 우연의 연속에 휘말렸을 때, 긴장으로 가슴이 마구 뛸 때 대처하는 지혜를 알려준다.

그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뤘지만 결국은 휴머니즘"이라며 "인간답게 포옹하며 살자는 얘기를 재미있게 표현해 본 곡들"이라고 설명했다.




기타를 친 적도 없던 그가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나간 건 대학 시절 교내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 한 장 때문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레드 제플린, 롤링스톤스를 좋아했던 그는 영미 팝 시장에서 남자로 태어났으면 로커가 됐을 것으로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음악의 길에 대한 집안의 반대가 심해 TV로 방송되지 않는 이 대회를 택했다. 한 달 동안 기타를 연습해 곡을 썼다. 당시 심사위원이 조동진이었다.

그는 "유재하 선배님은 한번도 뵌 적이 없지만 나를 음악의 길로 이끌어준 분"이라며 "스타일이 달라 음악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순 없지만 음악에서 느껴지는 진지함과 정신은 여전히 존경스럽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앨범을 시작으로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것 같아요. 다시 음악 작업을 하면서 젊은 날의 정서로 돌아가더라고요. 곡을 미리 써두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앞으로의 제 신곡이 저도 궁금하네요. 하하."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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