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신흥시장(EM) 국가들의 특허출원 건수가 선진국을 처음으로 추월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24일 보도했다.
프랑스의 자산운용사인 컴제스트가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12개 EM 국가의 2015년 특허출원 건수는 149만건으로 선진국의 148만건을 앞질렀다.
◇ 신흥국 10여년새 37만건→149만건…중국 주도 비약적 성장
이들 12개국이 개도국의 특허출원 건수 가운데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지만 10여년 전인 2004년에 겨우 37만2천건을 출원했던 것을 감안하면 비약적인 성장인 셈이다. 당시 12개국의 특허출원 건수는 선진국(130만건)의 29%에 불과했다.
12개 EM 국가의 특허출원 건수 급증은 중국 때문이다. 중국의 특허 건수는 2004년 13만건이었으나 2015년에는 8배 수준인 110만건으로 늘었다. 이는 한국(21만4천건)의 5배를 웃도는 규모다.
건수 자체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터키와 베트남, 인도 등 여타 EM 국가들도 큰 폭의 증가율을 보였다.
터키는 2004년보다 537%가 늘어난 5천841건, 베트남은 252%가 늘어난 5천33건, 인도는 161%가 늘어난 4만5천658건이었다.
반면에 일본의 특허출원 건수는 같은 기간에 약 4분의 1 가량이 줄어든 31만9천건으로 후퇴했고 유럽이 16% 늘어난 52만2천건에 그쳤다. 미국이 65%가 늘어난 58만9천건을 기록했지만 2004년 이후 선진국 전체의 증가율은 17%에 머물렀다.
WIPO 자료를 분석한 컴제스트의 에밀 월터 신흥시장팀장은 EM 국가들이 선진국 기업들을 위한 단순한 저비용 제조업 기지의 이미지를 털어내기 시작했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은 분석 결과는 "새로운 혁신기의 여명을 가리킨다"고 평가했다.
그는 선진국들이 지난 수년간 주춤거렸고 중국을 위시한 다수 국가가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면서 상당한 추격이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EM 국가들의 특허출원 건수가 급증한 것은 MSCI 신흥시장 지수에서 IT업종이 시가 총액 기준으로 최대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IT 업종이 MSCI 신흥시장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말 16%였으나 현재는 24.5%로 높아진 상태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MSCI 세계 지수에서 IT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16.4%다.
많은 EM 국가들이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린 것도 특허출원 건수를 끌어올린 배경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중국의 R&D 투자는 1996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0.57%였으나 2014년에는 2.05%까지 커졌다. 한국은 같은 기간에 2.24%에서 4.29%로 늘어 세계 평균(2.15%)의 2배에 달했다.
미국의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선정하는 세계 50대 스마트 기업 순위에서도 바이두와 화웨이, 텐센트, 디디추싱, 알리바바 등 중국 기업들과 한국의 쿠팡, 나이지리아의 아프리카 인터넷 그룹 등이 상위권에 올라있는 것을 볼 수 있다.
WIPO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특허는 물론 상표 등록 신청 건수에서도 여타 국가들을 앞지르고 있다.
◇ 특허의 질은 아직 선진국과 격차…"제조공정 특허에 치우쳐"
파이낸셜 타임스는 많은 EM 국가가 특허출원 부문에서 놀라운 진전을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질적 측면에서는 의구심을 가질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상하이 사무소장인 조너선 뵈첼은 중국이 비록 교육과 R&D 투자, 연간 3만명의 이공계 박사들을 배출하는 것을 보면 격차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특허를 포함한 혁신 지표 기준으로는 선진국과 여전히 질적 격차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1차 데이터들이 중국의 기술 발전을 과대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내비쳤다.
2015년 학술지에서 중국의 인공 지능 관련 논문이 인용된 횟수는 2천124회로 미국의 1천116회를 2배 가까이 앞질렀지만 그 대부분은 해당 논문이 발표된 학술지의 자기인용(self citation)이었다. 자기인용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미국의 논문들이 더 자주 인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컴제스트의 월터 팀장은 중국 등 EM 국가들이 출원하는 특허가 선진국에 비해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에 동감을 표시했다. 특정 제품 혹은 재료의 제조과정에 치우치고 있어 선진국에서 흔히 보는 제품 기반의 특허보다 권위나 값어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월터 팀장은 그 실례로 선진국의 하청 생산 비중이 높은 대만을 꼽았다. 대만의 폭스콘(훙하이 정밀)은 막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어떻게 아이폰을 조립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조립하는 것 따위의 특허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폭스콘이 보유한 특허가 쓸모는 있겠지만 아이폰을 실제로 발명한 것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인도는 엄청난 인구를 보유하고 있지만 특허출원 건수 자체는 중국의 4%에 불과한 수준이다. 월터 팀장은 이 나라의 덩치를 감안하면 절대적 기준으로 4만5천건의 특허출원은 인상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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