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 아옌데 '아프로디테'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나이 오십은 해가 져서 자연스럽게 하루를 되돌아보는 황혼의 마지막 순간과 같다. 그러나 황혼은 나에게 죄의식을 일게 한다. 어쩌면, 그런 연유로 나와 음식, 그리고 에로티시즘의 관계를 깊이 되돌아보게 된 것 아닌가. 아! 나를 그토록 유혹하는 육체의 약점들은 내가 그저 버릇처럼 드러내는 게 아니었다"
소설 '영혼의 집' 등을 쓴 칠레 출신 망명 작가 이사벨 아옌데(75)는 20여 년 전 딸을 병으로 잃고 3년간 무채색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음식에 대한 꿈을 꾸며 생의 의욕을 되찾기 시작한 그는 나이가 들어 먹고 사랑하는 것을 숙제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과 사랑, 성(性)의 관계를 찾아 나섰다.
신간 '아프로디테'(영림카디널 펴냄)는 아옌데가 1년여간 찾아낸 음식과 사랑의 관계에 대한 보고서다. 아옌데는 에세이 형식의 글에서 음식이 사랑을 위한 촉매제, 최음제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최음제는 도롱뇽의 눈이나 코알라의 발바닥, 개코원숭이의 고환 같은 것이 아니다.
아옌데는 사실 최음제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사랑의 욕망을 부추기는 모든 실체와 행위가 최음제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최음제'(aphrodisiac)라는 영어단어는 그리스 신화 속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에서 따왔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만든 음식은 그 자체로도 관능적이다. 그러나 작가는 연인이 양파 껍질을 벗기거나 아티초크 이파리를 뜯으며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짓궂게 옷을 벗어 던진다면 보다 관능적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새우를 다듬고 양념하고 요리하는 남자를 지켜보며 노련하고 차분한 그의 손길이 와 닿는 에로틱한 상상을 한다면 어떨까.
아옌데는 아라비안나이트부터 모파상의 단편소설까지 동서고금의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음식과 성에 관한 생각을 거침없이 풀어나간다.
모파상의 소설 속 매일 빵을 사러 가던 젊은 하녀는 좁은 창문 너머로 빵을 반죽하는 제빵사를 훔쳐본다. 넓은 등과 강한 팔, 땀으로 빛나는 피부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변하지 않는 사랑처럼 반죽을 되풀이하는 손길이 자신을 어루만지기를 원한다. 아옌데는 커다란 시골 빵을 보면 모파상의 제빵사와 함께 반죽하며 소녀의 탱탱한 피부를 어루만지는 제빵사의 손을 떠올린다고 고백한다.
책에는 작가가 최음제라고 주장하는 음식 레시피 145개가 실려 있다. 소스는 '전희로 가는 길목', 오르되브르는 연인들의 키스에 비유된다.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는 사랑의 유희, 그리고 메인 요리는 '사랑의 본론'으로 소개된다. '환희의 닭', '하렘 여인들의 샐러드', '홀아비의 무화과','비너스의 거품' 등 요리 이름마저도 에로틱하다.
음식이든 사랑이든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음식을 만들 때나 사랑을 나눌 때 서로를 사로잡고 만족시키기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마음을 나누며 공감하면 그게 바로 사랑이고 쾌락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자들에게 마음을 주고받는 '공감'이란 필수 요소가 없다면 어떤 최음제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 공감이 완벽의 경지에 이르면 곧 사랑이 된다. 나는 항상 공감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내가 더는 사랑을 할 수 없을 때, 그러니까 내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꼬부랑 할머니가 함께 즐길 남자를 찾지 못해 사랑할 수 없게 된다면, 그때에는 음식과 기억만이라도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286쪽)
원서는 20년 전인 1997년 출간됐다. 정창 옮김. 432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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