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공연·무용계에 '외부인사' 영입한 새로운 기획 이어져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클래식, 무용, 뮤지컬 등 공연예술계가 빗장을 열고 '외부인사'를 활발히 영입하고 있다.
패션디자이너, CF 감독, 영화감독 등 완전히 다른 영역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무대에 새로운 관점과 즐거움을 불어넣는 시도들이 잇따르는 것.
공연예술계의 이런 움직임이 새 관객을 개발하고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서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비전문가들의 '어설픈 시도'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러한 움직임이 가장 눈에 띄는 쪽은 오페라 무대다.
우선 국립오페라단은 오는 8월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선보이는 야외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의 연출을 패션디자이너 출신 정구호에게 맡겼다.
'동백꽃 아가씨'는 1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작품으로, 25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국립오페라단의 올해 최고 야심작이다.
정구호가 최근 국립무용단의 '향연'과 '묵향' 연출을 맡아 전통 무용을 세련되고 감각적인 수묵화처럼 표현해냈다는 호평을 받은 것이 이번 오페라 연출 선임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는 "이번 '동백꽃 아가씨'가 세계인이 사랑하는 오페라 중 하나인 '라 트라비아타'를 조선 정조 시대의 양반 사회로 재해석한 작품인 만큼 그의 한국적이면서 모던한 감각, 신선한 무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악오페라가 다음 달 12~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릴 '토스카'의 연출은 광고계 스타 감독 채은석이 맡는다.
'15초 예술'을 지휘하는 그가 두세 시간짜리 호흡의 오페라 무대를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받고 있다.
푸치니의 대표작 중 하나인 토스카는 1800년경 나폴레옹 전쟁 시대의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정열적인 오페라 가수 토스카와 그의 연인인 혁명파 화가 카바라도시, 권력 지향적 비밀경찰 스카르피아 사이의 사랑과 질투·탐욕·증오 등을 이야기하는 작품.
채은석은 "몇 해 전부터 '토스카' 연출을 의뢰받았지만, 작년에서야 결심했다"며 "저 스스로가 오페라를 잘 모르기 때문에 쉽고 재밌는 '서술형 오페라'를 한 번 만들어 보려 한다"고 말했다.
김관동 무악오페라 공연예술감독은 "오페라에 발을 깊이 안 담갔기 때문에 오히려 객관성을 갖춘 사람"이라며 "무대와 영상 등을 잘 아는 채 감독이 자신만의 소프트웨어를 무대에 어떻게 적용할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좋은 결과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오페라는 기본적으로 음악이 중심이 되는 장르"라며 "대중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한 오페라계의 시도로 보이지만, 오페라 장르에 대한 이해 없이 시각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뒀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만 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페라 무대 밖에서도 다양한 협력과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일 막을 내린 연극 '메디아'에서는 국내 1세대 패션디자이너 진태옥의 의상이 화제를 모았다.
그의 디자이너 경력 50여년 중 연극 의상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처절한 복수를 감행하는 주인공 메디아의 극단적인 면을 의상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메디아가 겪는 암흑과 같은 고통과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검정 벨벳 의상, 복수를 위해 자식까지 죽이는 장면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힘없는 저지 의상을 택했다.
진태옥은 "실험하는 것이 아주 행복했고 즐거워서 다음에 또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제 컬렉션 하지 말고 연극 의상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로 '메디아'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영화 '밀정', '놈놈놈' 등으로 유명한 김지운 감독은 최근 충무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매디슨 카운트 다리'의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1992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동명의 미국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아이오와주의 한 마을에서 한적한 삶을 살고 있던 주부 프란체스카와 촬영차 마을을 찾은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컴퓨터그래픽 없이 두 주인공인 뮤지컬 배우 박은태와 옥주현의 모습을 수십 개의 커튼과 스크린에 투사하는 기법을 시도했다.
제작사 관계자는 "김 감독의 뮤직비디오 연출은 처음"이라며 "영화 '매디슨 카운티 다리'를 인상 깊게 봤던 경험 때문에 흔쾌히 뮤지컬 뮤직비디오 연출을 수락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5~7일 국립발레단의 창작 신작 '허난설헌-수월경화'(안무 강효형)에서는 드레스 디자이너 정윤민의 독특한 공연 의상 66벌을 감상할 수 있다.
정윤민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신지아 등 클래식 무대 의상을 주로 만들어온 디자이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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