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담은 법정 스님 발자취…'불일암 사계' 재출간

입력 2017-04-26 17:22  

사진에 담은 법정 스님 발자취…'불일암 사계' 재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불일암을 오르내리기가 열다섯 해째입니다. 이젠 눈을 감아도 초입 풀숲에 이 계절 어떤 빛깔의 풀꽃들이 소담스레 피어 있을지도 환하게 떠오릅니다."

최순희(1924∼2015) 작가는 1994년 펴낸 사진집 '불일암 사계'의 머리말에서 이같이 말했다.

조계산 송광사의 암자인 불일암은 '무소유'의 참된 가치를 일깨워준 법정(1932∼2010) 스님이 머물렀던 곳이며 최 작가는 이곳 불일암의 꽃과 나무, 눈 내린 풍경 등을 사진에 담아 '불일암 사계'를 출간했다.

하지만 시중에 판매할 목적이 아니라 지인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소량 제작된 탓에 '불일암 사계'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다만 애서가들 사이에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며 인기를 끌었다.

신간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불일암 사계'는 최 작가의 사진집에 법정 스님의 글을 더해 재출간한 책이다.

법정 스님의 유지를 받드는 시민모임인 '맑고향기롭게'는 '불일암 사계'의 사진에 어울리는 법정 스님의 수필 속 문장을 선별해 짝을 지어 배치했다.

작가 최순희는 이태의 소설 '남부군'에 등장하는 '최문희'의 실존 인물로도 유명하다. 1924년에 태어난 그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여성이었다.




시인 김영랑의 동생 김하식과 결혼한 뒤 남편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 평양국립예술극장의 공훈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지리산에 숨어 들어가 남부군 문화지도원으로 활동하던 중 국군에 생포됐다. 하지만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평생을 고통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1970년대 후반 법정 스님이 잡지에 기고한 글을 읽고 스님에게 장문의 편지를 쓴 뒤 불일암으로 향했고 스님과의 인연으로 삶의 평안을 조금씩 회복했다. 이 책에는 자신의 삶을 더듬고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틈틈이 카메라에 담은 불일암의 봄·여름·가을·겨울이 담겼다.

1994년 '불일암 사계'를 낸 이후 좀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는 2015년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또 이 사진집에는 법정 스님의 모습이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불일암의 구석구석에서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최순희 작가는 '불일암 사계'의 초판 서문에서 "행여 수행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 눈에 안 띄는 곳만 찾아 바람처럼, 그림자마냥 그렇게 다녀왔을 뿐이다"며 "맑고 투명하게 살아가시는 법정 스님의 면모를 이 작고 보잘것없는 사진집으로부터 접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없는 기쁨이겠다"고 밝혔다.

책읽는섬. 216쪽. 1만4천 원.

kih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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