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잠자는 땅'이라는 뜻의 시베리아는 춥고 척박하지만 이곳에는 그 넓이만큼이나 많은 부족이 살아왔고 부족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개발의 물결이 밀려와 수천 년간 이곳을 터전으로 삼아온 부족들이 곧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시베리아 북극 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민족으로 알려진 유카기르인은 500명도 채 남지 않았으며, 예니세이강 하류에 사는 유목민 예네츠인은 2010년 인구조사에서 227명만이 생존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멸종하거나 보금자리를 떠나면 누대를 이어온 전통과 생활양식과 문화도 명맥이 끊기고 만다.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베리아 소수민족의 신화, 민담, 설화 등을 집대성한 책을 선보였다. 43개 부족의 이야기 1천17편 가운데 1차로 297편을 부족별 11권으로 엮어 최근 출간했다. 나머지 32권 720편은 올해와 내년 두 차례로 나눠 완간할 예정이다.
젖먹이를 데리고 숲에서 길을 잃은 여인이 굴에서 곰과 함께 겨울을 난다는 '여자와 곰'(돌간인 이야기), 아들을 바치는 대신 아들의 심장에서 불을 얻어 살아가는 '불의 주인'(셀쿠프인 이야기), 누가 가장 힘이 센지 얼음과 해와 먹구름 등에 차례로 물어보는 '차아차하안 차아차하안'(야쿠트인 이야기), 순록이 강을 건널 때 털이 젖지 않게 하려고 순록 발목의 가죽을 벗겨낸다는 우화 '바루치의 모험'(예네츠인 이야기), 77마리의 곰 가운데 자신을 도와줄 인간을 창조한다는 '부르한의 전설'(토팔라르인 이야기) 등이 먼저 독자와 만난다.
기록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승돼온 이들 이야기는 삶의 지혜와 풍부한 상상력을 담고 있어 인류 문화 콘텐츠의 보고로 꼽힌다. 또한 우리 민족의 원형과 맞닿은 대목이 적지 않아 한민족 북방기원설의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다.
러시아어를 전공한 전문 번역가 김은희·박미령·안동진·엄순천·이경희·홍정현이 우리말로 옮겼다. 각 권 200쪽 내외, 권당 1만8천 원.
heey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