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베팅조사는 '암담'…투표율·테러 여부가 변수될 듯
승리확률 30% 관측도…"트럼프보다는 훨씬 불리한 상황"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의 대이변이 유럽에서도 재연될 수 있을까.
프랑스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건 거물 포퓰리스트 마린 르펜이 프랑스 대권을 잡을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29일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결과·여론조사 기관들의 전망·탈락후보들의 움직임·프랑스 정세 등을 종합하면 아직은 비관적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르펜은 다음 달 7일 결선투표를 앞두고 서민, 노동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 여론조사·베팅 분석 보면 르펜 당선 가능성 '암담'
극우당인 국민전선 후보인 르펜은 지난 23일 1차 투표 때 득표율 21.3%를 기록해 중도신당 '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24.01%)과 함께 결선에 올랐다. 프랑스 내무부 집계에 따르면 르펜은 767만9천여표를 얻어 마크롱(865만7천여표)보다 100만표 가까이 열세를 보였다.
득표수 차이를 차치하고 결선 진출이 좌절된 후보들의 동향도 르펜에게 불리하다.
집권당인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제1야당인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이 마크롱을 지지하고 나섰다.
게다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까지 마크롱에게 지지를 보냈다.
유력 여론조사 기관들은 마크롱이 결선투표에서 60%대 안팎의 지지를 얻어 압승할 것으로 일제히 전망하고 있다.
유럽 베팅업체들의 배당률마저도 이미 마크롱 쪽으로 기울었다.
29일 현재 베팅정보사이트 '오즈체커'가 조사한 승리적중 배당률은 마크롱이 1/8∼1/7 정도로 르펜의 5/1∼11/2 정도보다 매우 낮게 나타나고 있다.
배당률은 베팅업체가 승리를 알아맞힐 때 주는 상금의 배율로 낮을수록 승리 확률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돈이 걸린 냉철한 예측장에서도 르펜의 패배 가능성을 크게 본다는 말이다.
◇ 투표율 변수 주목…낮으면 르펜도 가능성
주목할 변수를 제시하며 조금 더 섬세한 전망을 하는 이들도 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프랑스의 물리학자 겸 여론 분석가인 세르주 갈랑 교수는 자체 모델을 만들어 투표율에 따른 르펜의 승리 가능성을 예측했다.
르펜의 극우 콘크리트 지지층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마크롱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특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이변이 불거진다는 게 요지다.
연구 보고서를 보면 르펜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90%이고 마크롱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65%라면 르펜이 50.07% 신승으로 파란을 일으킨다.
르펜, 마크롱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각각 90%와 70%일 때, 85%와 69.5%일 때도 르펜이 이길 것으로 예측됐다.
실제로 투표율은 이번 선거의 변수로 자주 거론된다.
결선투표가 열리는 5월 7일은 일요일로 황금연휴 사이에 꼈다. 이튿날인 월요일도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로 공휴일이다.
그 때문에 휴가 중간에 주소지에 남아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이 줄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도시와 시골 중 어디에서 외지로 휴가를 많이 떠날지가 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1차 투표 결과를 볼 때 마크롱은 파리를 비롯한 도시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고 르펜은 시골이나 쇠락한 산업단지를 표밭으로 삼았다.
그간 프랑스의 대선 2차 투표 때 투표율은 80% 정도였다.
르펜의 승리 가능성을 구체적 확률로 추산한 애널리스트도 눈에 띈다.
싱크탱크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는 "마크롱이 이길 것이지만 안전한 승부는 아니다"며 르펜의 승리 확률을 30%로 제시했다.
브레머는 "투표율에 승부가 달렸고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외부변수까지도 있다"고 강조했다.
안보의제를 크게 부각하는 대형 테러가 발생하거나 걷잡을 수 없는 가짜뉴스가 떠돌 때 르펜이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르펜은 유럽에 들이닥친 난민사태와 테러에 대한 불안에 편승해 득세한 정치인으로서 안보강화, 무슬림 이민자 퇴출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 르펜, 트럼프처럼 반(反)기득권·반엘리트 상징될까
결국 르펜의 성패는 투표율 외에도 대중 불만의 대변자로서 탈락후보들의 표를 흡수할 수 있을지에서 갈린다.
최근 르펜은 특정 당론에 구애받지 않겠다며 최근 국민전선 당수직에서 전격 사임했다.
나치를 두둔하거나 인종주의 행보를 보이는 극우라는 낙인을 세탁해 우파 피용이나 극좌 장뤽 멜랑숑의 유권자들을 잡겠다는 심산으로 풀이된다.
피용과 멜랑숑은 1차 투표에서 각각 20.01%, 19.58% 지지를 받았다. 합계가 거의 40%로 르펜이 사력을 다해 끌어와야 할 유권자들이다.
극과 극이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르펜과 멜랑숑은 명분이 완전히 다르지만 세계화 반대, 유럽연합(EU) 탈퇴처럼 똑같은 공약을 지니고 있다.
피용도 개인적 특성을 살필 때 극우에 가까운 행보를 보인 적이 꽤 있었고 지지자들이 르펜에게 호감을 지닐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러나 르펜이 이들의 표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멜랑숑은 르펜의 지지 요청을 한마디로 거절했고 피용은 이미 마크롱을 지지했다.
대체로 나이가 지긋한 피용 지지자들이 안정을 원하는 까닭에 EU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같은 르펜의 극단적 공약을 기피한다는 분석도 있다.
르펜과 트럼프의 공통점은 세계화의 이윤분배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계층, 정치적 의견을 잘 드러내지 않는 계층의 지지를 얻는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작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이 이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한때 두 자릿수 여론조사 열세를 뒤집고 집권에 성공했다.
여론조사 때 침묵하다가 선거 때 본색을 드러낸 '샤이 트럼프'처럼 '샤이 르펜'도 도사리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르펜은 트럼프와 달리 무려 20% 안팎으로 뒤지는 데다가 유세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한계가 있다.
미국 여론조사 전문가인 네이트 실버는 미국 매체 '파이브서티에이트' 기고문에서 이런 상황을 지적하며 "르펜은 트럼프보다 불리한 처지"라고 결론을 내렸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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