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시인동네에 신작 2편…"많이, 잘 써야죠"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시인 안도현(56)이 돌아왔다. 2013년 7월 박근혜 정권 하에서 시를 쓰지 않겠다며 절필을 선언한 지 3년 9개월 만이다.
시인은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작년 12월 스스로 내린 금시령(禁詩令)을 풀었다. 붓을 꺾게 했던 공직선거법 재판도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박 전 대통령이 자리에서 완전히 물러나자 최근 출간된 월간 시인동네 5월호(통권 49호)에 신작 2편을 실었다. 33년 시력에서 박 전 대통령 재임기간 4년을 오롯이 공백으로 비운 셈이다.
"사기그릇 같은데 백년은 족히 넘었을 거라는 그릇을 하나 얻었다/ 국을 퍼서 밥상에 올릴 수도 없어서/ 둘레에 가만 입술을 대보았다// 나는 둘레를 얻었고/ 그릇은 나를 얻었다// 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 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빗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그릇' 전문)
"차오르고 있다 켜진다 따돌린다 떼쓰고 만지고/ 다짐받고 투항하고 촐랑대는데 싸르륵거린다 내린다/ 망해도 좋아, 날 좀 내버려둬, 작렬하고 있다 모여든다/ 흩어진다 뿌린다 두드러진다 더듬거린다 쿨럭이다가/ 다물어진다 수런댄다 미끄러지고 있다 갈망한다" ('뒤척인다' 부분)
시인은 세상 풍파에 휘둘리는 사이 경험한 내적 갈등을 돌아보는 한편 낯설어진 시에 조심스레 다가가는 듯 보인다. 박성현 시인은 "'사기그릇'이란 그가 평생을 품어왔고 또한 누대로 전하고 싶은 '시'의 상징임은 명백하다"며 "그릇의 '둘레'에 내포된 의미를 생각하면 할수록 시 쓰기의 욕망이 점점 뜨겁게 타오르고 있음을 느낀다"고 해설했다.
'뒤척인다'는 명사와 대명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동사를 중심으로 쓴 시다. 시인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우리 언어생활에서 명사와 대명사가 '갑'이라면 동사나 형용사 같은 용언은 '을' 취급을 받는다. 을인 동사들로 시를 써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옛날부터 했다"고 말했다.
시를 다시 쓰겠다고 한 이후 원고 청탁도 들어왔지만 시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시를 쓰면서는 트위터에 "며칠 동안 뒤척이며 시를 생각하고 시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적기도 했다.
"2012년 봄인가 여름까지 시를 썼어요. 쓰지 않으니 읽는 것도 게을러지더라고요. 다시 쓰기 시작하니까 많이 써서 빨리 시집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휴식 또는 충전기간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많이, 잘 써야죠." 창작과비평 여름호에도 안도현의 시가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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