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콥스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여자는 다 그래' 리뷰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이보다 더 청량한 모차르트는 일찍이 없었다. 객석에는 시종 웃음이 번졌다. "이 오페라가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었는지 처음 알았어요", "콘서트 오페라에 이렇게 몰입이 잘 될 줄 몰랐어요"라며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에는 행복감이 가득했다.
28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른 르네 야콥스(71)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여자는 다 그래'(원제 '코지 판 투테')는 모차르트 오페라부파(희극오페라)의 참맛을 알게 해 준 동시에 콘서트 오페라의 가장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 명연이었다. 지난 수년간 모차르트 오페라 공연 및 음반 작업으로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각종 음반상을 받은 '야콥스 식 모차르트'의 진가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세미스테이지 아 라 야콥스'. 프로방스식 조리법을 '아 라 프로방살'이라고 부르듯, 고음악의 대가 르네 야콥스 특유의 조리법으로 제작된 콘서트 오페라를 유럽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대개 '콘서트 오페라'는 별다른 무대장치와 무대의상 없이 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의 가수들이 보면대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야콥스 무대는 '콘서트 오페라'란 이름이 붙었음에도 배역에 어울리는 의상으로 등장한 가수들이 실제 오페라 무대처럼 생생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 때문에 그의 무대에 '세미스테이지'란 별명이 붙어 다닌다.
18세기 나폴리의 두 귀족 청년이 약혼녀의 정절과 신의를 테스트하려다가 쓴맛을 보게 되는 이 유쾌한 오페라를 야콥스는 이미 이런 방식으로 독일 프라이부르크와 쾰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공연해 열광적인 찬사를 끌어냈다.
이번 서울 공연 역시 '콘서트 오페라'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생동감과 관능미가 넘쳤다. 연출가 없이 야콥스가 동선과 연기 방식을 결정했고, 가수들이 갖가지 아이디어를 보탰다고 한다. 이번 세계 투어에서 세 여주인공 중 하나인 하녀 데스피나 역을 노래해 온 소프라노 임선혜는 스키니 진에 금빛 하이힐, 빨간 블라우스 차림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리허설 때 청바지를 입고 갔더니 야콥스 선생님이 무대에서도 그대로 입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무대의상이 됐죠." 임선혜의 설명이다.
대본의 레치타티보(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가 지닌 문학적 가치를 중시한 야콥스는 실제 연주에서도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비중을 똑같이 뒀다. 이날 가수들 역시 레치타티보를 엄청난 연극적 긴장감과 밀도로 노래했다. 야콥스는 레치타티보에 들이는 이런 노력을 관객이 이해하고 이에 반응한다고 말했다. 그의 모차르트 오페라가 다른 지휘자들의 연주와 뚜렷이 차별화되며 '혁명적'이라는 찬사를 받는 것은 바로 이런 차이 덕분이다.
이날 가장 큰 무대장악력으로 극 전체를 이끌어간 주인공은 임선혜였다. 그의 달콤하고 관능적인 음색과 절묘하고 섬세한 뉘앙스, 눈을 뗄 수 없는 매혹적 연기를 오페라 전곡 무대에서 다시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다. 미국, 독일, 칠레, 영국 등 다양한 국적을 지닌 모든 배역의 가수들이 적역이었고 하나같이 탁월한 가창력과 몸을 던지는 적극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그중에서도 피오르딜리지 역을 맡은 소프라노 로빈 요한센의 완벽에 가까운 레가토와 절창을 선보였다. 국립합창단원 16명으로 구성된 합창단 역시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역동적인 합창을 들려줬다.
"절대로 타성에 젖은 연주를 하는 일이 없다"고 야콥스가 칭찬하는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놀라울 정도로 가볍고 유머감각이 가득한 연주를 들려줬다. 모차르트 시대와 비슷한 36명 규모 오케스트라의 당대 악기 연주는 관객들에게 18세기에 와 있는 듯한 신선한 음악적 체험을 선사했다. 이들은 지휘자뿐 아니라 가수들의 노래와 연기에도 시종 집중하며 적절하게 반응해, 오케스트라 전체가 함께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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