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손'에서 '골칫덩이'로…대우조선-소난골 20년 인연

입력 2017-05-01 08:30  

'큰 손'에서 '골칫덩이'로…대우조선-소난골 20년 인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첫 수주…대우조선 어려울 때마다 손 내밀어

1조원 드릴십 인도 미뤄 유동성 위기 심화…'최대 리스크'로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박초롱 기자 = 예상치 못한 장기 저유가는 어려울 때마다 손 내밀어 줬던 20년 지기(知己)를 한순간에 골칫덩이로 만들었다.

대우조선해양[042660]과 앙골라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Sonangol)' 얘기다.

대우조선의 유동성 위기는 소난골이 1조원에 이르는 드릴십(원유 시추선) 인도 자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심화됐다. 이 때문에 4월 만기 회사채조차 막기 어렵게 된 대우조선은 또다시 국책은행에 손을 벌려야 했다.

대우조선과 소난골의 인연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아프리카의 앙골라 앞바다는 원유와 천연가스가 대량으로 매장돼 심해 자원의 보고로 꼽히는 곳이었다.

천연자원 개발·운송에 필요한 배가 필요했던 소난골은 해외 대형 조선사들에 배를 만들어 줄 수 있는지 타진했으나 반응이 시큰둥했다.

1975년 포르투갈의 식민지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된 내전에 이어져 온 앙골라의 불안한 상황 때문이었다.이때 대우조선이 소난골에 접촉해 계약을 따내기 시작했다. 대우조선 역시 외환위기로 회사가 휘청거리던 상황이었다. 어려운 시절에 서로를 도운 셈이다.






첫 발주는 5천400t급 원유 운반선이었다. 1997년 11월이었다.

소난골의 발주 이후 다른 해외선주들도 대우조선에 잇따라 배 주문을 내면서 대우조선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적 조선소로 발돋움하는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대우조선과 함께 소난골도 성장했다. 2002년 내전이 종식된 앙골라는 원유를 수출하며 10%대 경제성장률을 이어갔다.

소난골은 배가 필요할 때마다 잊지 않고 대우조선을 찾았다.

1998년과 2004년 정유 운반선을, 2007년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발주했다.

2009년엔 거제시가 당시 소난골 미국 자회사 사장인 밥티스타 무혼고 숨베씨에게 조선산업과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 시민증을 줄 정도로 소난골은 '큰 손'이 됐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지금은 소난골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지만, 이전에는 최고의 고객이었다"며 "소난골 관계자들이 한국을 찾으면 국빈 수준의 환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은 1997년 이후 소난골로부터 선박 15척, 해양플랜트 17기를 발주 받았다. 발주 금액이 136억달러(약 15조원)에 이른다.

소난골로부터 문제가 된 드릴십 2기를 수주한 것은 2013년이다. 드릴십은 심해를 뚫어 원유를 찾아내는 선박 형태의 시추 설비다.

사업의 중심축을 상선에서 부가가치가 큰 해양플랜트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하며 해양플랜트 수주에 주력하던 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 재임 시절이었다. 그는 현재 분식회계 등 대우조선 관련 비리 문제로 구속수감돼 재판받고 있다.






고유가 때 '수주 낭보'를 알렸던 드릴십은 저유가 상황이 되자 대우조선과 소난골의 관계를 뒤흔들었다. 두 회사의 끈끈한 연대에 균열이 생긴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다.

대우조선은 2013년에 수주한 드릴십 2기를 완성해 1호기를 지난해 6월 말, 2호기는 7월 말에 인도하기로 했었다.

12억달러(수주 당시 환율로 1조3천300억원) 규모의 이 사업은 인도할 때 대금 80%를 받는 '헤비테일' 방식으로 계약했기에 받아야 할 돈이 1조원에 이르렀다.

구조조정 중인 대우조선은 한 푼이 급했다. 그러나 소난골은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드릴십을 가져갈 수 없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대우조선에 전했다.

소난골 역시 대우조선처럼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았고, 이로 인해 앙골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까지 신청하는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에는 비상이 걸렸다.

앙골라 등지로 수차례 협상단을 급파해 자금을 받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작년 11월엔 현대상선[011200] 회생 협상을 담당했던 미국의 채무조정 전문가 마크 워커 변호사까지 투입했다.

그런데도 협상 진척이 더뎠고, 4월 회사채 만기일은 째깍째깍 다가왔다.






소난골은 정부와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에 대한 추가 지원 방안을 고민하게 된 시발점을 제공했다.

지난해 내내 대우조선의 수주 절벽이 이어졌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은 올해 1월에야 본격적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작년 말까지는 소난골에 늦어도 올해 상반기 중 드릴십을 인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난골에서 잔금이 들어올 경우 대우조선은 추가자금 지원이 없어도 올 연말까지 버틸 수 있었다. 이후 새 정부가 대우조선 상황을 다시 점검해보고 추가자금 투입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게 금융당국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우조선 사정이 급하다는 것을 간파한 소난골은 협상의 칼자루를 쥐고 느긋한 태도로 일관했다. 자칫하다간 큰 손실을 볼 판이었다.

결국 채권단과 정부는 소난골 드릴십 잔금을 '당분간 못 받을 돈'으로 포기하고, 채무 재조정·신규자금 지원 방안을 짜야 했다.

조선업 호황 때 각종 원유 시추 장비 등을 대우조선에 발주하며 큰손이 된 소난골이 역으로 대우조선의 발목을 잡는 최대 리스크가 된 셈이다.

완성된 드릴십은 1년 가까이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앞바다에 떠 있다.

cho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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