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현모양처 이미지 걷어내면 욕망이 보인다

입력 2017-05-04 10:51  

열녀·현모양처 이미지 걷어내면 욕망이 보인다

신간 '악녀의 재구성'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 4대 서예가로 꼽히는 양사언(1517∼1584)의 이 한시는 노력하지 않고 주변 탓만 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라는 해석도 있다.

양사언 출생설화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시골 마을을 지나던 영암군수 양희수를 우연히 만나 여느 양반집 딸 못지 않게 정갈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음식을 대접한다. 양희수가 선물로 준 부채 장식을 간직했다가 혼기가 다가오자 양희수를 찾아간다. 선물을 받았으니 다른 곳으로는 시집갈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 끝에 환갑에 가까운 양희수의 첩이 된다.

양희수가 세상을 떠난 직후 어머니는 아들 양사언에게서 자신의 흔적을 지워달라며 남편의 관 앞에서 자결한다. 서얼 신분인 아들의 앞날을 틔워주기 위해서다. 문중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다며 양사언을 적자처럼 대한다.

이런 극단적 자기희생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애절한 모성애의 표본으로 읽힌다. 그러나 신간 '악녀의 재구성'(들녘)은 설화를 한번 뒤집는다. 어머니는 단지 숭고한 모성 하나만으로 목숨까지 내던졌을까. 저자들은 영악함마저 느껴지는 결혼과정까지 거슬러올라가 어머니의 욕망을 본다.

평민으로 태어나 양반가의 소실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 어머니는 죽음으로써, 아들을 진정한 양반으로 만듦으로써 마침내 자신을 완성한다. 어머니의 일생을 움직인 건 신분상승의 욕망이었다는 것이다.

고전문학 연구자인 저자 홍나래·박성지·정경민은 설화나 야담 등 우리 고전 속 '악녀' 이미지에 주목한다. 바람직한 여성상의 대표 격인 열녀·효녀·현모양처에 견주면 비정하거나 음탕하다는 손가락질도 받을 수 있는 여성들이다.

'곰나루 전설'의 곰 여성은 남성을 욕망한다. 인간 남성을 납치해 자식까지 낳은 곰 여성은 방심한 틈을 타 인간 남성이 도망치자 자식을 강물에 빠뜨려 죽인다. 곰 여성의 욕망 앞에는 극진한 모성애도, "자식 때문에 산다"는 푸념도 없다.

네 번이나 결혼해 모두 남편을 잃은 과부 '덴동어미'는 화전놀이에 나가 노래하며 춤춘다. 모성·열녀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인정하고, 여성 내면의 독하고 집요한 욕망을 직시하자고 저자들은 말한다. 312쪽. 1만5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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