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전 美국무장관 신간 '민주주의' 펴내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출신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64) 전 장관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州) 버밍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흑인에 대한 노골적인 인종차별은 1960년대 민권운동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1965년 흑인에게도 투표권이 인정됐다.
고향 버밍햄에서 펼쳐진 민권운동은 어린 라이스에게 민주주의의 가치와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우리 국민'을 뜻하는 미국 헌법의 첫머리 '위 더 피플'(We the people)의 의미가 마침내 나 같은 사람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이는 제2의 미국 건국이었다"고 회고했다.
최근 미 서점가에 나온 그의 신간 'DEMOCRACY'(민주주의·486쪽, Twelve 출판사)에서다.
러시아 전문가로 스탠퍼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던 그는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장에 발탁된 후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정부에서는 NSC 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두 보수 정권의 외교·안보를 사실상 책임지는 자리였다.
국무장관으로서 그가 미국 외교의 영역을 넓히고, 무엇보다 민주정부의 전세계적 확산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데는 어린 시절 생생히 지켜본 민권운동이 큰 역할을 했다.
신간은 그의 민주주의 확산에 대한 노력과 신념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21세기 미국의 외교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뒀다.
결론적으로 라이스 전 장관의 눈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천명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신(新)고립주의 외교는 그 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부시 정부 시절의 '신(新) 세계질서' 정책은 라이스 전 장관에게서 나왔다. 미국이 국제사회에 깊숙이 관여해서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자유로운 자본주의를 확산한다는 것이었다.
이 기조는 빌 클린턴, 아들 부시, 버락 오바마 정부 등 세 차례의 진보와 보수 정권이 교차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미국 외교의 바탕이 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가 어떻게 구현될지는 불확실하지만, 어떤 형태가 되든 간에 라이스 전 장관이 주창한 '신세계질서' 노선은 위기를 맞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미국은 더는 '세계 경찰'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미정부의 민주주의 확산 노력이 늘 좋은 결실을 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장관 재직 시절 그는 중동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민주적 개혁을 추진하고 기초적 인권을 후원하려 했지만, 실패의 쓴잔을 들어야 했다.
책에서 그는 2004년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벌어진 이라크인에 대한 미군의 가혹 행위 등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한다.
또 같은 해 '오렌지 혁명'으로 부정부패에 찌든 정부를 규탄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약속한 야당이 승리했지만, 결국 정권교체 후 개혁 실패로 2014년 또 다른 혁명을 맞은 우크라이나를 통해 민주주의 확산 외교의 어려움도 술회한다.
라이스 전 장관은 실패의 경험을 전하며 "어렵다. 정말 정말 어렵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확산이 중요하지 않거나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 강조한다.
오히려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조차도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긴 줄을 선다"면서 민주주의 가치의 보편화를 역설한다.
민주주의 확산 정책이야말로 "피할 수 없는 미국의 도덕적 책임"이자, 장기적으로 미국 안보의 잠재적인 보호막이 될 것이라는 게 라이스 전 장관의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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