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면서도 구린내 풍기는 자기애" 어느 수집광의 자기고백

입력 2017-05-05 11:44  

"달콤하면서도 구린내 풍기는 자기애" 어느 수집광의 자기고백

신간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요즘 유행하는 '덕후'라는 표현은 남들에겐 사소한 무언가에 꽂혀 심취한 사람이나 상태를 가리킨다. 예전엔 기괴하게 여기던 골방 덕후들의 정서에 주목하고 공감을 표하는 최근 사람들의 심리는 무얼까.

신간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책세상 펴냄)는 이혼과 실연으로 중년의 위기를 겪으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50대 수집광의 자기 고백적 에세이다.

저자인 윌리엄 데이비스 킹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극무용학과 교수는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무척 열정적으로 수집하는 수집가라고 소개한다.

그가 자랑스레 여기는 대표 컬렉션 중에는 1천579개의 시리얼 박스와 수천 권의 장서가 있다. 빈 크래커 상자 52개, 낡은 사전 34권, 철제 만능열쇠 꾸러미 3개, 사용한 항공우편 봉투 뭉치, 1960년대 발급된 도서대출 카드, 콜리플라워 비닐백, 시가 포장용 리본도 컬렉션에 포함돼 있다.

이야기는 저자가 마흔세살이던 1998년 열여섯 살 연하 여자친구와의 로맨스로 아내와 이혼하게 된 뒤, 짐을 챙기다 차고에 쌓인 고물상의 쓰레기더미 같은 수집품들과 마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로부터 3년 뒤 어린 여자친구는 그의 수집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 홀가분하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나고, 저자는 깊은 절망감 속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이 책을 쓰기 시작한다.

그의 수집 인생은 열한살 때 어머니의 절친한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우표 컬렉션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뇌성마비에 정신박약인 여덟 살 많은 누나에게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빼앗긴 채 외롭게 자라는 왜소하고 내성적인 소년의 만성적 우울과 도피처를 찾는 절박함이 있다.

온갖 잡동사니를 그러모으는 그의 수집벽은 사춘기와 청년 시절을 거치면서 더욱 집요해진다. 수집품에 대한 저자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버릴 수 없는 강렬한 애착과 혐오감을 함께 느낀다. 저자는 이를 병리적 증상이라 여겨 의사에게 정신상담까지 받는다.

책에서 저자는 과거를 회상하는 중간중간 남들이 보기에 전혀 가치 없는 것들에 집착하는 자신의 수집벽이 갖는 의미에 대해 반복해서 자문하고, 자신의 심리상태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시도한다.

저자는 자신의 수집벽을 "아이러니하면서 과도하고, 독특하면서 평범하고 열려 있으면서도 제한적이고, 달콤하면서도 구린내를 풍기는 자기애"로 바라본다.

또한, 수집을 "예술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낯섦을 받아들이고 배우는 방식"이자, "우리가 세계를 소비하듯 우리를 소비하는 이 걸신들린 세계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긍정하며 받아들인다.

책은 어쩌면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 쏟아붓는 덕후들의 관심과 애정이 세상과 두려움에 맞서는 저항수단이자, 절박한 존재의 가치 찾기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김갑연 옮김. 364쪽. 1만6천원.

abullap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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