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째 '걸어서 국민속으로'…사직구장 앞서 가족과 함께 '깜짝유세'
"진짜 안철수 맞나, 맞네"…BIFF 거리엔 1만여명 운집
"당연히 롯데 팬…부산 본가 나팔꽃 만개, 길한 조짐"
(부산=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철수야! 고마 힘내래이!"
5일 아침 부산진구에 있는 부전시장 앞.
노점상을 운영하는 한 할아버지는 빗속을 뚫고 뚜벅뚜벅 시장에 걸어들어온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안 후보는 노인에게 "고생하십시오. 나라 살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지지해달라', '도와달라'며 엎드리는 게 아니었다.
시장을 돌며 만난 마늘가게 노인, 야쿠르트 아주머니, 수산물 가게 중년여성, 견과류집 청년 사장 등 악수하는 사람마다 안 후보는 먼저 힘을 내라고 했다. 조금만 참아달라고 했다.
전날 대구에서 시작한 '120시간 도보 대장정'은 이날 자신의 고향인 부산으로 이어졌다. 간밤 부모님이 계신 부산 본가에서 묵은 안 후보는 아침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는 청색 반소매 셔츠에 연둣빛 얇은 방수 점퍼를 걸쳤다. 비 소식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어제 처음 신은 새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 매고 집 문을 나섰다.
시장 상인들의 환대를 뒤로하고 그는 곧장 유엔(UN) 국립묘지로 향했다. 여전히 가는 빗줄기가 내렸지만, 우산 없이 홀로 참배했다.
안 후보는 대연역에서 센텀시티역까지 지하철을 탔다. '부산 어린이날 큰잔치' 행사가 열리는 벡스코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역에 내리니 하늘이 말갛게 개었다.
역 앞에서 안 후보를 발견한 한 30대 엄마는 아들, 딸에게 "안철수 아저씨야, 엄마가 얘기한 아저씨"라고 소개했다. 행사장 주변엔 정의당 심상정 후보 캠프도 진을 치고 '동심(童心)' 잡기에 한창이었다.
벡스코 전시장 앞에서 안 후보는 걸음을 멈추고는 둘러싼 부산시민들에게 물었다. "아이들 교육에 뭐가 제일 고민이세요?"
누군가 "사교육비"라고 하자 안 후보는 "TV토론에서도 보셨겠지만 다른 후보들은 자꾸 돈(재정) 이야기를 한다. 저는 교육을 제대로 바꿔야 우리 아이들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인조잔디밭에 앉아 식사 중인 가족에게 다가서서는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걱정 많으시죠. 학교에서도 미리 (미세먼지) 주의를 시킵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오전 11시 40분께 기자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 한 할머니가 "박력 있게 좀 해라. 부산고 나왔다이가. 우리가 마 다 지지한다"고 하자 안 후보는 "네"하며 웃었다.
센텀시티역 인근 한 중식집. 그는 약속대로 기자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자리에 들어오면서 "짜장면 먹어야지"하는 그의 얼굴엔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안 후보는 건강이 괜찮으냐는 질문에 "지금은 체력을 기르는 중"이라며 오히려 이번 도보 유세가 당선 뒤 국정운영을 위한 '기초 운동'이라고 했다.
그는 "부모님께서 나팔꽃을 키우시는데 나팔꽃이 오늘 10개가 넘게 피었다"며 "(부모님께서) 굉장한 길조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점심 후 윗도리를 갈아입었다. 비 때문에 눅눅했던 것도 있었지만, 오후부터 본격적인 '도보 대장정'에 나서기 위한 채비였다.
오후 사직야구장 방문을 앞두고는 아이처럼 설레 하는 표정도 지었다.
부산고 출신인 안 후보는 기자들이 롯데 자이언츠 팬이냐고 묻자 당연하다는 듯 "아유, 그럼요"라며 "고등학교 때 모교가 전국 우승을 5번이나 했다"며 자랑했다.
그는 해운대에서 사직야구장으로 갈 때는 기자단 버스에서 '깜짝 동승'하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도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는 이어졌다.
안 후보는 김경록 대변인이 "평소 야구를 많이 봤느냐"고 묻자 "고등학교 때 많이 봤죠. 고1 때는 의무적으로 가야 했다"면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말도 사실은 유명한 야구감독 이야기"라고 했다. 대선을 불과 4일 앞둔 자신의 각오이기도 했다.
마침 사직구장에서는 '라이벌' 롯데 자이언츠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지만 정작 관전하지는 못했다. 촉박한 일정 때문이었다.
구장 인근을 돌던 안 후보는 지금은 의원직을 사퇴했지만, 자신의 지역구였던 노원구 주민을 만나기도 했다.
안 후보는 구장 앞에서 시민들에 둘러싸이자 '깜짝 유세'를 펼쳤다.
그는 "1, 2번은 과거이고 3, 4, 5번은 미래"라면서 "그래서 저는 배낭을 메고 국민께 제 소신을 말씀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 김미경 교수와 딸 안설희 씨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다음 행선지는 남포동. 안 후보는 다시 지하철을 탔다. 연산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자갈치역으로 향하던 중 한 여성은 안 후보를 쫓아타려다 지하철 문에 몸이 잠시 끼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는 남포동 부산BIFF거리. 생각지 못한 환영 인파에 안 후보는 얼굴이 상기됐다. 모여든 시민은 당 추산 약 1만 명에 달했다.
안 후보는 시민들이 자신을 에워싸자 발판에 올라 "저는 국민께서 미래로 나아가는 선택을 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했다. 안 후보는 시민들이 자신의 말을 중간중간 그대로 따라 읽자 감격했는지 잠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안 후보는 부산시민공원을 끝으로 고향 부산에서의 '뚜벅이 유세'를 마치고 배낭 하나만 짊어지고 광주로 향했다. 어둑어둑해진 하늘에선 다시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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