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 주민들 "동네 시끄러워질까 걱정"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이승환 기자 = "조용히 살고 싶어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잘 떠나는 거죠."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살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 이사 작업이 이뤄진 6일 오전 자택 주변은 쓸쓸한 분위기였다.
이날 오전 7시 30분께 이사 업체 트럭이 자택에 도착했고 인부들이 8시께부터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주인이 구치소에 있는 탓에 그간 손길이 닿지 않은 집기들이 박스에 담겨 트럭으로 옮겨졌다.
열광적으로 태극기를 흔들던 지지자들은 온데간데 없었다. 인부들이 '으랏차' 하며 짐을 옮기는 소리만 들렸다.
자택 벽에는 지지자들이 붙여놓은 태극기와 응원 문구가 담긴 메모지들이 보였다. '빼앗긴 헌법 84조 주권자인 국민이 되찾겠다'라고 쓰인 지지자들의 현수막도 구겨진 채 전봇대에 걸려있었다.
경찰이 행인들의 자택 진입을 통제했지만 오가는 주민들을 제외하고는 이사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온 이가 거의 없어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주민들은 휴일 장을 보거나 운동을 하기 위해 자택 앞을 지나다 이사하는 모습을 잠시 구경했다. 일부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출근길이라는 삼성동 주민 10년차 최모(51·여)씨는 "탄핵 때 기자, 경찰, 지지자들 모여 소음 천지였는데다 과격 지지자들 때문에 동네 다니기도 무서웠다"면서 "솔직히 이사 가니 좋다"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 정문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사하는 모습을 무덤덤하게 지켜보던 주민 강모(45)씨는 "(박 전 대통령) 구속은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왜 슬퍼해야 되나"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어 "잘못 저질렀으면 대가를 치러야한다. 사필귀정이다"라면서 "애초에 대통령 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처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일부 있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던 이모(62)씨는 "내곡동 사저 안 가봤는데 여기보다 좋았으면 한다"면서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삼성동 사저를 왜소하게 볼까 봐 태극기를 흔들러 왔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자택 인근에서 태극기를 흔든 사람은 이씨 한 명뿐이었다.
동네 주민이라는 한 80대 여성은 "(박근혜가) 잘 해보려고 그랬겠지. 마음이 아퍼"라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이영선 청와대 경호관이 자택 건너편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취재진에 포착되기도 했다. '마음이 무겁겠다', '재판, 이사 준비는 잘 되가냐' 등 질문에 이 경호관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은 오후 1시 50분께 내곡동 자택에 도착했다. 구룡산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오르던 주민들이 짐을 내리는 장면을 구경했다.
이곳 주민들은 박 전 대통령이 이곳으로 이사온 게 불편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인근에 사는 김모(69·여)씨는 "박 전 대통령은 안타깝고 언제든 온다면 환영이지만 태극기 지지자들은 오지 않았으면 한다. 아늑한 이 동네가 시끄러워질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주민 박모(45)씨도 "쉽게 풀려날 것 같지 않은데 왜 이사하는지 의문이다. 동네 시끄러울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 단독주택인 삼성동 자택은 1983년 건축됐으며 박 전 대통령은 1990년부터 대통령 재임 기간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거주했다.
삼성동 자택 인근을 지나던 캐나다인 A(34)씨는 "한국인 아내를 둬서 이번 사태가 남의 일 같지 않다"면서 "한국인들이 너무 낙담하지 말고 다음 주 훌륭한 대통령을 뽑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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