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노부스 콰르텟' 키웠다고요?…그들이 절 키웠죠"

입력 2017-05-08 09:00  

"제가 '노부스 콰르텟' 키웠다고요?…그들이 절 키웠죠"

설립 10주년 맞은 이샘 목프로덕션 대표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가끔 제게 '노부스 콰르텟을 키웠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얼굴이 닳아서 없어질 것 같은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느껴요. 저는 노부스 콰르텟에 많은 빚을 진 사람이에요. 그들이 저를 키웠고, 지금의 저를 만들어줬죠."

창립 10주년을 맞은 공연 기획사 목프로덕션의 이샘(44) 대표는 공연계에서 자타공인 "실내악에 환장한 사람"으로 통한다.

그는 서른을 넘긴 나이에 그저 클래식 음악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항공사 승무원에서 공연장을 관리하는 하우스 매니저로 이직했다.

차근차근 공연 기획 업무를 익힌 뒤 2007년 자신의 이름을 건 공연 기획사이자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인 목프로덕션을 차려 '실내악 불모지'인 한국에서 한해 적어도 40회 이상의 실내악 공연을 열고 있다.

현재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지휘자 최수열,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을 포함한 각 분야를 대표 아티스트들이 20여명 소속되어 있는 '젊은 스타 아티스트들의 기획사'로도 유명하다.

이 대표는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회사를 떠난 아티스트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작은 자랑거리"라며 웃었다.

"잘 되는 연주자만, 공연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운명 공동체로 살아온 10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저희 소속 연주자들은 다 절 '언니, 누나'로 불러요.(웃음) 아티스트와 그들의 음악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힘든 날들을 버티게 해 준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물론 실내악 음악 공연 기획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피로함을 느낄 때도 있다.

사실 한국에서 실내악은 고(古)음악, 현대음악 등과 함께 가장 '돈이 안 되는' 음악 장르로 통한다. "실내악 특성상 크게 공연을 열 수 없는 데다가 관객층도 얇아서 수익을 내기가 참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실내악의 매력이 푹 빠져있다.

"실내악은 오케스트라와 달리 한 파트가 단 한 명에 의해 연주되는 작은 편성의 연주 형태를 말하죠. 오케스트라가 지휘자 한 사람의 음악적 비전을 수십명의 단원들이 구현하는 형태라면 실내악은 각 멤버가 모두 지휘자인 셈이에요. 팽팽한 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타인에게 나를 맞추기 위한 양보와 희생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빈틈없고 치밀한 앙상블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의 희열을 느끼기도 해요. 이렇게 매력 넘치는 장르를 어떻게 혼자만 듣고 즐기겠어요."

이런 그에게 '기준점'이 되는 아티스트는 늘 노부스 콰르텟이다.

2007년 결성된 노부스 콰르텟은 2012년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독일 ARD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2014년 2월 제11회 국제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한국 현악사중주단으로는 처음으로 우승,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린 팀이다. 한국 실내악의 역사는 노부스 콰르텟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 대표는 "노부스 콰르텟 때문에 실내악 음악을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된 거고, 그들을 통해 더 실내악을 배웠고, 좋아하기에 조금 더 세상에 알리기 위해 여기까지 왔을 뿐이에요. 실내악의 기쁨을 알려준 우리 연주자들에게 큰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될성부른 떡잎'을 골라내는 이 대표만의 비결이 있을까.

"그냥 '운명'이에요. 어느 날 무대 위에서 '아, 저기 내 아티스트가 있구나!' 하면서 한 음악가에게 완벽하게 반하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러한 경험은 결코 자주 오지 않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성장형의 연주자'들에게 마음이 쏠리는 것 같아요. 대부분 젊고, 뛰어난 음악성과 전달력을 가진 연주자들이죠. 제 개입이나 도움이 상대적으로 덜 요구되는 완성형의 기성 연주자에게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목프로덕션은 오는 13일 서울 서초동 페리지홀에서 창립 기념 공연을 연다. 노부스 콰르텟 등 소속 아티스트들의 갈라 무대로 꾸며진다. 이 대표의 지난 10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너의 뒤에서 건네는 말'(아트북스)도 곧 출간된다.

sj997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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