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필립공 은퇴 소식에 절망한 남태평양 섬 부족민

입력 2017-05-08 11:34  

영국 필립공 은퇴 소식에 절망한 남태평양 섬 부족민

신붓감 찾아 떠난 산신의 아들로 생각…방문 기다리다 낙담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남태평양 섬나라의 한 작은 부족이 1만6천㎞ 떨어진 영국에서 날아온 급작스러운 소식에 절망하고 있다.

남태평양 바누아투 남쪽의 탄나 섬에 사는 유나넨 부족민들은 지난주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는 멀리 떨어진 관계로 이틀가량 늦게 들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91)의 남편 필립공(95)의 은퇴 소식이다.

8일 시드니모닝헤럴드 등 호주 언론에 따르면 이 부족민들은 필립공을 지역 산신의 아들로 추앙해왔고 언젠가는 자신들을 찾을 것으로 철석같이 믿어왔다.

부족민들은 매일 필립공에게 기도를 드리면서 특히 자신들의 주요 작물인 바나나와 열대 뿌리채소인 참마(yam)가 잘 자라기를 빌어왔다.

족장인 잭 말리아(53)는 "필립공은 언젠가 우리를 방문할 것이라고 말해왔다"며 "우리는 그가 여전히 올 것으로 믿고 있다"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말리아는 또 "그가 온다면 사람들이 가난하지도 않게 되고, 병이 사라지고 빚도 없게 되며 작물들도 잘 자랄 것"이라는 기대도 소개했다.

부족민들은 마을 전설을 통해 지역 산신의 아들이 부유하고 강인한 신붓감을 찾아 바다 밖으로 떠난 것으로 믿었고, 1960년대부터 필립공을 산신의 아들로 확신하게 됐다는 게 인류학자들의 설명이다.

바누아투가 영국과 프랑스 공동통치 아래 있던 시절, 부족민들은 관공서에 내걸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의 사진을 보고는 이런 믿음을 품게 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필립공이 산신의 아들이라는 믿음은 지난 1794년, 독립 이전인 바누아투를 여왕과 함께 찾으면서 더 굳혀졌다.

말리아를 포함해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필립공의 사진을 여러 장 보관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말끔한 정장 차림의 필립공이 이 부족민들이 만들어 런던으로 보낸 봉 하나를 쥐고 있는 것도 있다.

2003년 족장 직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말리아는 "조상들이 우리 풍습의 일부가 영국에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필립공은 우리에게 중요하다"며 필립공의 두 번째 방문 희망을 거두지 않고 있다.

유나넨 마을은 탄나 섬 최대 인구 밀집지인 레나켈에서 비포장도로로 3시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다.

남성들은 낡은 티셔츠를 입고 보통 날이 넓고 큰 칼인 마체테를 들고 다니며, 여성들은 풀잎으로 만든 치마를 입는다. 아이들은 옷을 걸치지 않고 생활한다.






cool2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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