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부탁해선 안돼"…탯줄 잘라준 거제 할머니
(거제=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서울 구경 좀 시켜주소."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태어났을 당시 탯줄을 잘라준 것으로 알려진 경남 거제시 거제면 명진리 남정마을 추경순 할머니(87).
추 할머니는 10일 자신의 손으로 탯줄을 잘라준 문재인 후보 당선이 확실시된다는 소식에 "(대통령 만나러)서울 가면 좋겠는데, 나이도 많고 제대로 걸어다니지도 못해서 어떻게 갈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추 할머니는 한국전쟁이 채 끝나지 않은 1953년 1월 한 집에 기거하던 문 당선인 모친이 당선인을 낳자마자 달려가 탯줄을 잘라줬다.
당시 문 당선인 부모는 6·25 동란을 피해 거제로 피란을 왔다.
남으로 자유를 찾아 온 부모가 처음 정착한 곳이 거제였다.
1·4 후퇴 '흥남철수 작전' 당시 잠시 중공군을 피한다는 심정으로 별 준비도 없이 서둘러 떠나온 피난길이 평생 실향민의 삶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후 문 당선인 가족은 북한 출신 피난민이 많이 살았던 부산 영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할머니는 "당시 문 당선인 부친은 일하러 나가고 없었다"라며 "옆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내가 용기를 내 탯줄을 잘랐다"고 생생히 기억했다.
문 당선인은 말썽을 피우지 않는 착한 아이였다고 추 할머니는 회상했다.
당선인은 6살쯤 됐을 때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추 할머니는 당시 피란민들이 거제로 몰리면서 사는 게 말이 아니어서 거적을 덮고 자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문 당선인 가족에게는 월세도 받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살도록 했다.
지난해 9월 추석을 앞두고 거제를 찾은 문 당선인이 자신을 만나러 집으로 왔을 때 너무 반가웠다고 덧붙였다.
당시 문 당선인과 함께 거제지역 유세를 다녔던 변광용 더불어민주당 거제지역위원장은 "유세차에서 연설을 하다 내려와 추 할머니를 모시고 유세차로 올라가 '제 탯줄을 잘라준 할머니'라고 소개했다"고 회고했다.
추 할머니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내가 뭘 부탁해서는 안 된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그는 문 당선인 생가 옆에 최근 지은 2층 양옥에서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아들 배영철(54)씨는 "문재인 당선인이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며 "영원한 국민의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문 당선인이 측근 관리를 잘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주기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명진리 남정마을은 거제면사무소에서 차량으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20여 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문 당선인 생가 앞쪽으로는 드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는 야산이 병풍처럼 자리하고 있다.
대지 60㎡ 정도에 건물면적 10여㎡ 정도의 자그마한 생가는 슬레이트 지붕 그대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당선인 생가는 현재 추 할머니 아들들이 창고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ky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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