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외교 중심으로 북핵해결·다자협력체 전환 추진
햇볕정책 계승…개성공단 재개 넘어 남북경제통합으로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이정진 기자 = 문재인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과 4강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녹록지 않은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고 한반도 주변 4강과 협력외교를 펴겠다고 약속했다. 또, 햇볕정책을 계승해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고 남북 경제통합을 거쳐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문 대통령은 10일 취임선서에 이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다.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면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상대가 있는 외교·안보·대북 정책의 특성상 우리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핵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한일 위안부합의 논란과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 험난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4강 외교, 북핵 극복·동북아 다자협력 지향
미·중·일·러 등 주변 4강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문재인 정부 외교는 북핵 문제를 넘어 동북아의 신 냉전구도를 다자협력체제로 바꾸는 것을 지향한다.
문 대통령의 공약집 외교 부문을 보면 '북핵 문제 해결', 또는 '북핵 문제'라는 표현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 관련 세부 항목에 각각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와 번영공간 확대'라는 항목에 '한중일 3국 협력 강화'와 '(북핵) 6자회담 플랫폼 재건을 통한 다자협력체제 구축'이 포함됐다.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 상공에 드리워진 한미일-북중러 간 신 냉전 구도의 먹구름을 걷고 과거사 문제와 결부된 한중일 사이의 '동북아 패러독스'를 극복하는데 북핵 문제의 해결을 돌파구로 삼겠다는 구상으로 볼 수 있다.
6자회담 재개를 시작으로 한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남-북, 북-미, 북-일 관계가 개선되면 그것을 발판으로 동북아에서 다자간 협력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몸담았던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 속에 도출된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구상과 잇닿아 있다.
9·19 공동성명은 "6자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공약했다", "6자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안보 협력 증진을 위한 방안과 수단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는 등의 문구에서 보듯 6자회담을 동북아 다자 안보 협의체로 발전시키는 이상을 담았다.
동북아 다자 협력이라는 목표를 위해 넘어야 할 우선 과제로 북핵을 설정한 만큼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상당한 외교력을 쏟을 전망이다. 단 대북 제재·압박 일변도였던 직전 정부와 달리 협상의 장을 만드는 노력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의 동시·병행 추진의 장을 만드는 데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또 문 대통령은 한미관계를 '외교 기축'으로 규정하며 군사동맹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유대 지속,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 마련, 다원적 전략동맹으로서 글로벌 차원의 협력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자신이 몸담았던 참여정부 시절 논쟁을 불렀던 대미 외교에서의 '자주'와 '이념' 색깔 대신 '동맹'과 '실용'의 색깔을 강하게 칠한 것으로 보이지만 대북 해법과 동맹 현안에서 미국에 '할 말은 하는' 관계를 추구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사드 문제로 삐걱대는 한중관계에서 문 대통령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내실화와 고위급간 전략경제대화(SED)와 국방 당국 간 대화 활성화, 북핵문제 등 한반도 문제 관련 전략적 소통강화, 한중FTA 이행 강화 등을 공약한 데서 보듯 경제·안보 등에 걸친 포괄적인 관계 강화를 지향한다.
한국 경제에 중국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측면과 함께 북핵 해결과 한반도 통일에서 중요한 지분을 가진 파트너로서의 측면을 고려해 중국을 중시하는 기조가 읽힌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을 어떻게 조화시킬지는 가동 직전단계인 주한미군 사드 문제의 처리 방향이 풍향계가 될 전망이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한반도 문제와 경제 문제 등과 관련한 전략적 협력 강화와 '위안부 등 역사문제에서의 원칙적 대응' 등 이전 정부에서 양립이 쉽지 않았던 내용을 핵심 공약으로 열거했다.
위안부 합의에 대한 한국내 부정적 여론과 북한발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공조 강화 필요성을 두루 감안한 공약이었다. 일본 아베 정권이 양국관계의 '토대'로 간주하는 위안부 합의를 문 대통령이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대일 외교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는 북핵 문제 해결 상황에 따라 남·북·러 3각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양국 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발전, 북극항로 공동 개척과 시베리아 에너지경제협력 대폭 확대 등도 공약했다.
◇ 햇볕정책 계승…개성공단 재개 넘어 남북 경제통합 추진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일관되게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한반도 평화구상'을 발표하면서는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북한의 변화를 전략적으로 견인해 내겠다"고 말했다.
물론 문 대통령도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동의한다고 밝혀왔지만, 정책의 무게는 대북 포용에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 교류부터 재개한 뒤 상황에 따라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 경제협력 분야까지 정상화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에 돈이 들어가는 대규모 경협 사업은 북한 문제의 진전이 없는 한 재개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 임금이나 관광 대가로 북에 건네지는 자금이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자칫 서둘렀다가는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기조와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27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북한이 핵을 동결한 뒤 폐기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나오면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핵 폐기 절차 진입을 두 사업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셈이다.
특히 유엔 대북제재때문에라도 재개가 쉽지 않다. 작년 개성공단 중단 이후 나온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에 은행 개설이 금지됐다. 북한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방안도 마땅치 않은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유엔 제재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있는데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정상적으로 사업을 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중장기적으로 남북 경제통합(단일시장)을 거쳐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북핵 해결에 따라 '한반도 신경제벨트'를 구축하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이는 에너지·자원 중심의 환동해권과 산업·물류·교통 중심의 환황해권, 환경·관광 위주의 중부권 등 3개 권역에서 남북 경협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는 문 대통령도 공약집에 적시했듯 '북핵 해결에 따라' 추진될 수밖에 없다.
남북기본협정 체결도 공약에 들어있다. 남북이 1991년 체결한 남북 기본합의서를 변화된 상황에 맞게 수정·보완한다는 의미다. 아울러 접경지역을 남북이 함께 관리할 '공동관리위원회' 설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산가족·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인도지원과 연계하는 방안도 모색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북한은 과거 이를 금강산관광 재개와 연계해 와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처럼 북핵 문제에서 진전이 없으면 남북관계에서 질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치·군사회담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여의치 않으면 정상회담을 통해 승부수를 걸 가능성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는 "북한의 핵폐기 부분을 확실히 하기 위해 김정은을 만날 것"이라며 정상회담 추진 의지를 표명했다. 이날 취임사에서도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했다. '여건'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북핵 문제 진전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transi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