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러시아의 해킹 공격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 정작 러시아 정부도 안팎의 해킹 공격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에선 수만명이 참가한 반정부 시위가 잇따랐다.
러시아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이런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샬타이 볼타이'(러시아어로 '땅딸보'라는 뜻)라는 이름의 러시아 해커단체가 폭로한 이메일 자료에서 촉발됐다.
이 해커단체가 공개한 자료는 푸틴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전 대통령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와 관련이 있다고 추정된 이메일 계정에서 나온 것으로, 메드베데프 총리가 그간 축적한 막대한 재산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지인을 동원한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메드베데프 총리는 자신의 이메일 계정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해커단체와 야권 운동가들은 해당 이메일에서 주문한 의류와 운동화가 메드베데프 총리 주변인들이 운영하는 기업이나 단체로 배달되거나 메드베데프 총리가 주문 내역과 일치하는 제품을 착용한 모습이 언론 등에 포착됐다며 것으로 보고 있다.
운동화가 반정부 시위의 상징처럼 떠오른 것도 메드베데프 총리의 주문한 물건 가운데 운동화가 포함돼 있어서다.
여기에 야권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해커단체가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제작한 메드베데프 총리의 부정축재 고발 영상이 유튜브 등에서 인기를 끌며 시위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해커단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반군을 후원한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를 해킹해 공개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내전을 현지 분리주의자 간의 갈등이 원인이라며 러시아 정부가 군을 파견하거나 후원한 적이 없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이 단체는 해당 자료가 러시아의 전 대외경제담당 부총리인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의 이메일 계정에서 취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WSJ는 러시아가 지난해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훔친 정보 유출이 러시아의 정치 지형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정보당국은 지난해 민주당 힐러리 캠프를 해킹해 선거 개입을 시도했다고 결론지었다. 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해킹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쟁'이 러시아의 새로운 군사교리(군사행동의 공식적 원칙과 지침)이라고 꼬집었다.
luc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